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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묵상

54. 민족과 신앙의 순수성?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하였다. “나는, 헷 사람의 딸들 때문에, 사는 게 아주 넌더리가 납니다. 야곱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딸들 곧 헷 사람의 딸들 가운에서 아내를 맞아들인다고 하면, 내가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무슨 사는 재미가 있겠습니까?” 이삭이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복을 빌어 주고 당부하였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아라. 이제 곧 밧단아람에 계시는 브두엘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거기에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들 가운데서 네 아내가 될 사람을 찾아서 결혼하여라.”(창세 27:46-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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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가 마흔 살이 되던 해, 헷 사람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사람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성경은 이 두 여자가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보도합니다(26:34-35). 그래서인지 오늘 본문은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 어머니의 친척들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가게 되는 이유도 바로 같은 민족끼리 결혼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합니다. 장자권 투쟁 때문에 피신한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전승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구절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는 내용인데, 이삭이 죽기 전에 아들에게 주는 27장의 축복과는 달리 길 떠나는 야곱에게 주는 축복이며, 여기서 이삭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약속을 그대로 야곱에게 전해 줍니다. 야곱은 이방 여자와 결혼해선 안 되고, 같은 민족끼리 결혼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같은 혈통에게만 하나님의 축복이 계승된다는 사유가 녹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사장 문서로 바벨론 포로를 경험한 이들의 신념이 들어 있습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해야 하는 상황의 반영이라는 것입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사실 매우 추상적인 것입니다.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조상 찾기를 하면서 DNA 검사를 했었는데, 한 개인 안에는 수많은 인종과 민족들의 피가 섞여 있었습니다. 매우 당연한 결과입니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 영토라는 경계선을 두고 국가를 이루며, 동질의 역사를 살아온 경험과 그것 때문에 현실적으로 민족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한다든지, 타자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어선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이방과 섞이지 않으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평등 정신이 훼손될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계급 질서에 명령과 복종이 익숙한 이방적 문화가 평등공동체를 망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이 갖고 싶어 애타하는 아합왕은 이스라엘 전통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끙끙 앓았지만, 이세벨 왕비는 가차 없이 나봇을 모함해 죽입니다. 민족을 얘기하면서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서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 남을 배제하고 밀어내는 일이 되지 않게 하여 주소서. 더 큰 하나가 되도록 더 애쓰고 노력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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