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8. 16.
새로운 기독교 운동의 내용 (2) 성경 - 해석과 규범
1.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신앙 공동체가 현실을 이해하고 변혁하는 데 사용해 온 해석적 도구이자 규범의 원천으로 읽는다.
2. 성경은 인간이 쓴 책이다. 다양한 저자, 편집자, 공동체의 손을 거쳐 형성되었다. 이는 곧 성경이 역사적, 언어적, 문화적 맥락에 속한다는 뜻이다.
3. 성경의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고대적이다. 창세기의 우주론, 고대 근동의 신화적 배경과 같은 요소들이 성경 텍스트에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성경 전체를 “신화적 요소를 포함한 고대 문헌군”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장이라기보다 정확한 출발점이다.
4. 성경은 문학 장르의 박물관이다. 개인 체험, 전승, 설화, 시, 지혜문학, 법, 민족서사, 정치적 논증, 종교 담론 등이 혼재하며 서로 대화한다.
5. 정경(성경이 ‘성경’이 된 과정)은 길고 가변적이었다. 히브리 성경은 부분별로 상이한 시기와 과정을 거쳐 정착되었고, 신약 27권은 주로 4세기에 동·서방 교회에서 규범으로 굳어졌다. 이 과정은 단번에 하달된 명단이 아니라, 긴 토론과 수용의 역사였다.
6. 그 결과, 성경 안에는 ‘걸러야 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이 함께 있다. 폭력의 정당화, 권력의 신성화, 협소한 도덕, 반대로 급진적 정의, 해방, 자비의 빛나는 통찰이 공존한다. 그러므로 해석은 필수이며, 해석은 분석과 분류에서 시작한다.
7. 정경화의 핵심은 ‘발견적(heuristic) 체험’의 공유였다. 서로 다른 공동체가 성경을 읽으며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규범적 통찰을 반복적으로 발견했고, 그 축적이 ‘성경’을 ‘정경’으로 만들었다. 곧 권위는 텍스트의 효력에서 발생했다.
8. 이 지평에서 “교회사는 성경 해석사”(게르하르트 에벨링)라는 주장은 역사적 관찰이다.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다시 해석함으로써 자신을 갱신했다.
9. 따라서 성경의 권위는 천상에서 고정 불변으로 낙하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반복적으로 검증한 효력에 의해 공공연히 수립된 것이다. 권위는 부여된 바이며, 동시에 책 자체의 깊이와 넓이가 그러한 부여를 낳은 사실적 이유가 된다.
10. 이로써 성경은 유일무이한 절대 문헌이 아니라, 다른 위대한 인류 문헌들과의 대화 속에서 탁월한 매개가 된다. 성경은 과거와 현재, 문화와 문화를 잇는 대화의 관문이다.
11. 규범은 자율적이어야 한다. 강제된 규범은 규범이 아니다. 동시에 규범이 완전히 독립적, 초역사적일 수 없다는 난제가 있다.
12. 성경의 규범 지위는 ‘임시적(계약직)’이다. 어떤 시대 및 상황에서 성경은 세계 해석의 권한을 ‘임시’로 위임받지만, 그 권한은 해석의 책임과 공적 검증 아래에 있다. 효력이 입증되지 않으면 해임된다.
13. 이 맥락에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역사적 표어로 존중하되, 또한 그것을 “성경과 더불어(cum verbo), 성경을 통하여(per verbum)” 재정식화한다. 종교개혁 개신교 전통은 성령을 위해 이 표현을 사용했으나, 새로운 기독교 운동에서는 이를 확장하여 전통과 이성과 경험을 위한 표현으로 활용한다. 즉, 최종 권위는 성경을 통한 진리의 효력에 있으며, 이는 전통, 이성, 경험과의 공적 대화 속에서 시험된다.
14. 성경 해석에는 두 가지 원리가 있다. 역사 비평과 가치 판단이다. 역사 비평이란 본문을 그 당시의 언어, 장르, 전승, 편집 맥락에 놓고 읽는다. 이는 성경을 ‘오늘’ 작동하게 만드는 전제적 절차다. 가치 판단은 본문이 오늘 어떤 규범을 낳을 수 있는가를 공적 이성의 기준(일관성, 보편화 가능성, 해악 최소화, 약자 보호, 생명 증진 등)으로 평가한다. 이때 순환(성경에서 규범을 찾고, 그 규범으로 성경을 읽는)의 위험은 공개적 비평과 반증 가능성으로 제어한다.
15. 비평과 판단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본문-맥락 연결의 설득력, 신앙 밖의 이성에게 제시 가능한 공공성, 무엇보다 개인, 공동체, 사회에서 폭력 감소, 정의와 사랑의 증진, 생명 보전으로 확인되는 결과인 "열매로 알게 될 것이다."
16. 성경 해석의 세 가지 적은, 역사성과 문학적 장르 등에 대한 감각을 제거하는 문자주의, 텍스트를 무제한 상징화해 검증을 회피하는 알레고리주의, 그리고 사전 확정 교리로 본문을 재단하는 교리주의다.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셋 모두를 거부하고, 비평 가능한 해석만을 '성서신학'(성서학이 아니라)이라 부른다.
17. 발견된 규범은 공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목회자와 신학자를 포괄하는 그리스도인과 공동체은 자신들의 해석이 개인, 사회, 역사 속에서 수긍할 만한 효력을 실제로 내는지 검증받을 책임이 있다. 해석이 착취를 은폐하거나 폭력을 증폭하면, 그 해석은 폐기된다.
18. 현대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전통에 따라 성경을 “거룩한 책”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거룩함은 배타적 마술성이 아니라, 시대를 반성, 비판, 치유하는 초월 지향의 효력에서 비롯한다. 동시에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성경만이 아니라, 성경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모든 진지한 증언들과 더불어 진리를 추구한다.
진규선 목사 페이스북 8월 11일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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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공부하신 진규선 목사님의 글이다.
성경을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하는지,
참으로 잘 정리하셨다.
한국 교회의 교인들이 이 정도의 상식에서 성서를 보면 좋겠다.
- 향린 목회 28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