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8. 15.
하느님께서 책이나 가르침이 아닌 한 인격을 통해 당신을 결정적으로 계시하셨다는 고백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다. 이는 그리스도교를 다른 세계 종교들과 구별할 수 있게 해 준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하느님이 책(토라와 꾸란)에 당신을 결정적으로 계시하셨다고 믿는다. 불교에서는 계시라는 개념을 쓰지는 않지만, 굳이 쓴다면 붓다라는 인물보다 그의 가르침에서 드러난다고 여긴다. 붓다는 존경의 대상이지만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건 그의 가르침이다. 힌두교 역시 마찬가지다. 힌두교에서 계시는 특정 인격보다는 전통의 가르침에 있다.
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차이가 있음을 이야기하려 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예수를 하느님의 결정적인 계시로 보았다. 성서가 무오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책인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 위에 올려놓는 것이자,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해 계시된 말씀보다 책에 더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신이 된 말씀, 성육신은 책 속에 있는 말씀보다 더 크다.
마커스 J. 보그 지음/민경찬·손승우 옮김, <마커스 보그의 고백: 기억에서 회심으로, 그리고 확신으로>(룩스문디, 2025. 07. 31.),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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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많은 교인들은 여전히 문자적 성서 읽기에 매여 있다.
성서를 맹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산다.
나는 그런 한국 교인들을 ‘실천적 무신론자’, 또는 ‘실제적 무신론자’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갈릴리 호수 위를 걸어서 가셨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호수 위를 걸어가는 교인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베드로도 걸어갔다고 말하면, 대충 얼버무리고 만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이야기가 전해 주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그것이 지금 내 삶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무엇을 요구하는지로 나아가지 못한다.
성서는 옳게 해석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최소한 고전 문헌학에 대한 이해와
성서의 해석방법론을 진지하게 공부해야 한다.
한국의 다수 교인은 이것에 매우 게으르다.
그런데 더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는 책의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보그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교는 죽은 문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격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셨다고 믿는다.
‘글’, ‘문자’가 아니라 ‘사람’, ‘삶’이다.
그런데 살아 계신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도
성서를 제대로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성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서를 넘어서야 한다.
- 향린 목회 28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