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8. 13.
내가 가정하건대, 하느님은 선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위한 은총을 충분히 주신다는 사실에 따라 구축된 이전의 개연성과는 별개로, 그런 종교적 체험이 내가 설명한 모델과 들어맞는다는 것을 보여 줄 명쾌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교, 유다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불교, 도교와 같은 세계 종교들의 공통 범위에 대해 분명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학자가 있다. 프리드리히 하일러(Friedrich Heiler)는 그런 공통 범위들 일곱 가지를 어느 정도 기술하였다. 내가 여기서 하일러 사상의 풍부한 문맥을 재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다룬 주제들의 목록이나마 알려 주지 않을 수는 없다. 이를테면, 초월적 실재가 있다는 것, 그가 사람의 마음 안에 내재한다는 것, 그는 최고의 아름다움, 진리, 의로움, 선함이라는 것, 그는 사랑, 자비, 연민이라는 것, 그에게로 가는 길은 회개, 자기 부정, 기도라는 것, 그 길은 이웃을 위한, 심지어 원수들을 위한 사랑이라는 것, 그 길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신을 알거나 신과 하나 되거나 신 안에서 소멸되는 것이 지복(至福)으로 믿어진다는 것 등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제 어떻게 세계 종교들의 이런 일곱 가지 공동 특징들이 무제한적 방법으로 사랑 안에 머무는 것에 대한 체험에 내재하는지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자격이나 조건, 유보나 제한 없이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은 초월적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초월적인 누군가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 때, 그는 내 마음 안에 있으며 내 안에서 나에게 실재한다. 그 사랑이 지성과 진리와 책임감을 통하여 자기 초월에 대한 나의 무제한한 충동을 실행할 때, 그 충동을 실행하는 그 사람은 지성과 진리와 선함에서 최상임에 틀림없다. 그가 그를 향한 사랑에 대한 선물의 형태로 나에게 오기를 선택하기 때문에, 그는 사랑임에 틀림없다. 그를 사랑하는 것은 나 자신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또한 초월되어야 할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를 사랑하는 것은 즐겨 그에게 관심 집중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기도와 명상과 관상이다. 그의 사랑은 많은 결실을 가져오기에, 그것은 그가 사랑하거나 사랑할지도 모르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 안으로 넘쳐 흐른다. 끝으로, 사랑 자체가 일치에 대한 갈망인 반면, 신비에 집중된 사랑의 체험으로부터는 지식에 대한 열망이 샘솟는다. 그러므로 미지의 사랑하는 사람의 연인에게 축복이란 미지의 사람에 대한 지식과 그와의 일치를 뜻한다. 아무튼 그것들은 이루어질 것이다.
버나드 로너간 지음/김인숙·이순희·정현아 옮김, <신학 방법>(가톨릭출판사, 2012. 04. 3. 초판 1쇄), 16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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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지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초월적인 사랑 안에 머물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사랑 안에서 지성과 진리와 책임감을 가지고,
나를 부정하면서 나를 넘어서는 일들이 실행되는가를 묻고,
사랑하는 이에게 관심을 쏟으며
사랑하는 일이 진실한 기도가 되는가를 보면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더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매일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묻고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1) 나와 우주를 초월하시는 분이 계심을 확신하는가?
2) 그 분이 내 마음 안에 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는가?
3) 그 분은 최고의 아름다움, 진리, 의로움, 선함이라는 것을 확신하는가?
4) 그 분은 언제나 사랑, 자비, 연민이라는 것을 확신하는가?
5) 그분에게로 나아가는 길은 회개, 자기 부정, 기도라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가?
6) 그 길은 이웃을 위한, 심지어 원수들을 사랑이라는 것임을 알고 실천하는가?
7)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하나님을 알거나 하나님과 하나 되거나 하나님 안에서 내가 소멸되는 것이 지복(至福)으로 믿어지는가?
- 향린 목회 28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