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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열 네 살 무렵의 니체

by phobbi posted Aug 12, 2025 Views 22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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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8-12

2025. 08. 12.

 

니체는 열네 살 이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고전 세계 속에 파묻혀 살았다. 그는 고대 세계에서 막 걸어 나온 사람 같았다. 철학자 니체는 그 고대의 눈으로 당대 유럽을 보았고, 그 자신 앞에 펼쳐져 있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세계의 낯섦을 예리하게 묘사했다.

 

고전 연구에 파묻힌 삶이 없었더라면 니체의 사상도 관점도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15년 뒤에 쓰게 되는 <반시대적 고찰>에서 니체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이 시대의 아들로서 나 자신을 넘어서 그토록 반시대적인 경험에 도달하게 된 것은 오로지 내가 고대, 특히 고대 그리스의 제자이기 때문이다.”(<반시대적 고찰>, 2서문’) 니체에게 고전 문헌은 사유의 원천이었고 사유의 무기였다. 뒷날 그는 2,000년 전에 죽은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을 불러내 그들을 이끌고 당대 유럽 세계와 일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슐포르타에서 니체가 고전어 공부 다음으로 많이 한 것이 글쓰기였다. 나움부르크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슐포르타 시절 내내 속도를 높였고 문체와 관심과 분위기에서 벌써 성인기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냈다. 니체는 나움부르크 시절의 친구 핀더, 크루크와 함께 게르마니아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문학과 음악에 관해 글을 쓰고 토론하는 이 모임은 니체의 창작 갈증을 풀어주었고 교양 욕구를 채워주었다. 훗날 니체의 삶에 폭풍 같은 영향을 줄 바그너(Willhelm Richard Wagner, 1813-1883) 음악을 처음 들은 곳도 이 모임이었다. 열광적인 바그너 숭배자 크루크가 1861년 바그너 음악을 소개했는데, 이 첫 만남에서 니체는 불쾌하고 낯선 느낌을 받았다. ~~

 

지식에 대한 니체의 욕망이 폭발한 곳도 슐포르타였다. 니체는 읽고 쓰고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지나친 독서 때문에 눈이 나빠져 근시 교정용 안경을 써야 했다. 18598월에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현재 나는 지식, 그리고 일반적인 교양을 더욱 많이 알고자 하는 조급한 심정에 사로잡혀 있다.”(홀링데일, 레지날드, <니체, 그의 삶과 철학>, 김기복·이원진 옮김, 이제이북스, 2004. 41)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도 슐포르타 시절이었다. 1861년 부활절에 니체는 친구 파울 도이센과 함께 견진 성사를 받았다. 그러나 여기가 마지막이었다. 완만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변화 끝에 독실한 신앙인은 기독교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다. 니체는 다시는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년 뒤 게르마니아에서 발표한 단편 <사람들의 유아기에 대하여>에서 니체는 종교란 유아기적 산물이라고 선언했다.

 

신이 인간이 된 것은 인간이 자신의 천국을 영원한 내세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건설하려 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천상의 세계에 대한 환상 때문에 인간의 영혼은 현세의 삶과 잘못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러한 환상은 사람들의 유아기적 산물이다.”(홀링데일 앞의 책, 45)

 

고명섭 지음, <니체 극장>(김영사, 2012, 6. 15.), 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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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사유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깊이 있는 고전 연구, 치열한 글쓰기 훈련, 음악과 예술에 대한 감각 등이다.

 

혹시 내 아이들이 자식을 낳아 할아버지인 내게 뭔가 교육을 부탁한다면,

아주 재밌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동서양 고전을 알려 주겠다.

나의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셨던 것처럼.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의 할머니는 무학(無學)이셨다.

그래서 들려줄 이야기가 그리 많지는 않으셨다.

 

먹고 살고, 이런저런 일들 하느라,

내 아이들은 완전 방치하며, 자유롭게 마음대로 살게 했는데~~,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혹시라도 은퇴 후에 시간이 된다면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고전 강좌를 열고,

우리 손자 손녀들에게 알려 주고 싶다.

니체가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얻은 것은 바로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고전 인문학에 대한 박식한 지식과

글쓰기에 의한 사유 훈련, 예술에 대한 감각이 있는 니체에게

당시 기독교와 서구의 형이상학적 사유 전통은 유아기적 산물이거나 시대 착오적인 것이었다.

 

니체 덕분에 기독교도 새로운 길로 들어섰고,

오늘날 니체가 와서 현대 신학을 만나면 즐거워하면서 대화했을 것이다.

 

- 향린 목회 28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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