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신앙

by phobbi posted Aug 11, 2025 Views 203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5-08-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5. 08. 11.

 

나는 아직도 여전히 신앙인이다. 나에게 하나님은 영원히 실재적(real)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나에게 예수는 하나님 현존이실 뿐만 아니라 나의 이해 능력을 넘어서 계신 하나님의 실재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관문이다. 나는 기도의 사람이다. 나에게 그 기도란 생명, 사랑, 존재이신 하나님의 의미를 명상하는 것이요, 그 의미를 행동으로 내 보이는 것을 뜻한다. 나는 윤리적으로 깊은 헌신의 사람이다. 나에게 윤리란 개인적이고 협동적인 행동을 통하여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과 사랑과 존재의 대행자가 되는 것을 뜻한다. 내가 얻기 위해 분투노력하는 신앙의 특징적 표시는 어린애 같은 의존성이 아니라 침착 냉정한 성숙성이다. 나의 하늘 소망은 생명과 사랑의 원천이며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의 영원성 안에서 나누고 공유할 능력에 있다.

 

유신론의 죽음이 우리로 하여금 이리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이 새로운 하나님 이해에서, 교회들은 행동을 통제하는 기관이 되기를 멈추고, 생명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일에 헌신하는 기관이 될 것이다. 예배는 생명 한복판에 계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경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기독교 교육은 특정 종교선전 양식을 가지고 신자들에게 교리를 주입하기보다 진리 탐구가 될 것이다. 공동체 안의 생활은 충만하게 살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우리가 될 수 있는 존재의 모든 것이 되게 하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는 믿어야만 되는그 어떤 것(something to be believed)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must live) 신앙, 우리가 들어오도록 초청하면서 우리 앞에 서 있는 비전이 된다. 나는 신조들을 넘어선 하나님, 성육신을 넘어선 그리스도, 우리 존재의 불완전을 감히 움켜쥐고 안전을 생산하는 어제의 교회가 만들어낸 속박들(boxes)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삶의 방식을 선포한다. 이런 분명치 않은 비전 속으로 나아갈 준비를 갖춘다는 것은 속박하는 신조들과 폐쇄적인 성서를 가진 교회가 전통적으로 거하던 곳은 더 이상 살만한 곳이 못 된다는 인식을 정직하게 직시한다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그냥 머물기로 작정한다면, 우리는 죽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존 쉘비 스퐁 지음/최종수 옮김, <새 시대를 위한 새 기독교>(한국기독교연구소, 2005. 9. 20), 309-310.

 

======================================

 

어떤 존재자(a thing)이든

존재의 근원(the ground of being)이 되는

존재 자체(being itself)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사랑의 보편성이다.

 

문제는 어떤(how or what) 존재자로 존재하느냐이다.

 

스퐁 감독의 자전적 신앙고백처럼

나 또한 어제의 교리와 신학, 교회에는 도저히 머물 수가 없다.

초자연적 유신론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고,

진리(眞理)는 소유가 아닌 추구이기에,

수만은 일리(一理)들 속에서 분별하고 투쟁하며,

유한한 존재자의 한계와 연약함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 개념을 재구성하는 모험을 하며

차분히 그러나 철저하고도 냉정하게 자라나는 신앙으로 무르익고 싶을 뿐이다.

성실함 자체는 하늘의 길이고, 성실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성실한 노력이 강박이 되지 않는 까닭은,

인간은 실수하는 존재이며, 하나님은 용서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To error is human, to forgive divine)

 

- 향린 목회 281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