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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이분법의 위험성

by phobbi posted Aug 03, 2025 Views 216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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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8-03

2025. 08. 03.

 

심리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누가 봐도 기괴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적 확신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신경정신과적 혹은 신체적 질환으로 말도 안되는 생각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의료적으로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 치료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사례는 정상비정상’, 심리적으로 건강한상태와 병든상태가 확연히 나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분류는 결코 돌로 새긴 것처럼 확실하지 않으며, 우리는 사람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일에서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히 이렇게 두 개의 카테고리로 사고한다. ‘정상비정상같은 이분법적 분류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언뜻 당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카테고리적 사고는 심리학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현상이다. 사회심리학자 고든 윌러드 올포트(Gordon Willard Allport)의 말마따나 인간의 정신은 카테고리를 도구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정돈된 삶을 살려면 그래야 한다.”

 

세상에서 만나는 무수한 현상을 카테고리로 분류하면, 많은 것이 쉬워진다. 카테고리는 복잡함을 줄여주고, 정돈하고, 구조를 만들고, 결정을 내리는 걸 도와준다. ~~ 누군가를 건강하다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면, 더 이상의 조치가 필요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아프다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면, 어떤 치료 옵션이 있는지 숙고해야 한다. 이런 옵션이 의미가 있을지 점검하고, 이런 토대에서 치료를 권해야 한다.

 

따라서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것은 결정을 내리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수단이다. 의사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내려야 하는 크고 작은 결정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경향은 참으로 위험하다. 흑백논리로 이어지고, 극복하기 힘든 고랑이 파일 수 있다. ‘정상비정상이라는 카테고리 사이의 고랑은 특히 깊다. 정상과 비정상의 중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우리 머릿속에 그어진 이 두 카테고리 사이 경계선은 너무나 예리하다. ‘정상인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다. 그러나 비정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며, 낯설고 끔찍하고, 심지어 공공에 위험한 사람이다.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유영미 옮김, <제정신이라는 착각>(김영사, 2024. 01. 23. 15), 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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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고,

이미 경험한 것에 기반하여 사물을 적절하게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받아들인다.

즉 우리가 보는 세상, 알고 있는 세상은 사실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다.

해석되지 않은 사건이나 사태는 장기 기억으로 남지 않고,

또 뇌는 기억의 실용성을 위해 특징만을 포착해서 기억하기에,

우리가 이미 무엇인가를 겪었다는 것 자체가 해석의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여러모로 굳게 확신하는 세계상을 만들어낸 다음,

다른 사람의 확신이 자신의 확신과 일치하면, 그것을 정상적인, 옳은 것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비정상적인 것’,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자기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이 우리의 오감으로 포착되고 뇌에서 이해되고 종합하여

입으로 발설되거나 행위로 드러날 때 그것은 이미 해석이다.

그래서 정말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의 판단이나 선택, 생각이나 행위를 보고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확신할 때,

그런 나의 확신이 곧 착각일 수 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고, 남이 제정신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신이 틀렸다고 여기는 일을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돌았다라고 낙인찍는다.

 

나는,

진리를 외치면서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비진리로 내모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각각의 일리를 말하면서 자기 의견이 부분적일 수밖에 없음을,

주관이 지니는 한계 안에서만 우리는 대화할 수 있음을 직시하며 말하는 사람이고 싶고,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이고, 진리는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영원불변이라고 하면서,

성경에 쓰여 있으니, 쓰인 대로 믿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들과는 대화하기가 정말 어렵다.

대체로 이런 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일방적 독백인 경우가 많기에 상호배움의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이 강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복잡한 세계를 더 좋은 방식으로 이해해 보려는 사람과의 대화는

참으로 풍성하고 생기를 돋게 해준다.

 

그동안 내가 자라고, 만나고, 목회했던 교회는

다행히도 사유의 한계와 언어의 불완전성을 이해하면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함께 대화하려는 교인들이 다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목회를 이어갈 수 있는 것 같다.

 

- 향린 목회 273일차

 

 

 

 

  • ?
    최필수 2025.08.03 07:15
    인간이 카테고리적 사고를 피할 수 없다면 거기에 스펙트럼을 적용하는 훈련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이 아니라 얼마나 정상이고 얼마나 비정상인가를 정도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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