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8. 02.
오늘날 미국 그리스도교의 분열은 과거와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요즘 분열은 교파 중심의 분열이 아니다. 기존 개신교 교파들 사이의 차이는 이제 크게 중요하지 않다. 많은 교파, 교단이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 협정을 체결했으며 목회자 자격을 상호 인정하고 파송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주류 개신교 교파들의 경우 과거와 같은 로마 가톨릭에 대한 극심한 거부감은 많이 줄었다. 주류 개신교 교파에 속한 사람이 자기 자식이 다른 개신교 교파에 속한 사람이나 로마 가톨릭 신자와 결혼할까 봐 걱정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지 오래다.
오늘날의 분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름표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이런 이름표 붙이기가 고정관념이나 왜곡된 심상을 낳을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름표’(label)와 ‘명예훼손’(libel)은 한 글자 차이다. 하지만 이름표 붙이기는 차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고,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기도 하다.
이러한 위험성을 염두에 두고 나는 오늘날 미국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다섯 범주(보수[conservative] 그리스도교인, 관습적인[conventional] 그리스도교인, 확신 없는[uncertain] 그리스도교인,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교인, 진보[progressive] 그리스도교인)로 나누어 보려 한다. 양상은 조금 다르겠지만, 이러한 그리스도교인 유형은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각 범주에는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 어느 한 범주가 선을 독점하지도 않는다. 또한, 범주는 칼 같이 나뉘지 않는다. 보수적이면서도 관습적인 그리스도교인이 있을 수 있고, 관습적이면서 불확실한 그리스도교인도 있을 수 있고, 관습적이면서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교인도, 다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보수 그리스도교와 진보 그리스도교는 상반되며 결코 양립할 수 없어 보인다. 보수 그리스도교와 진보 그리스도교 사이에는 거대한 분열이 있어서, 오늘날 그리스도교 스펙트럼의 양극단을 이루고 있다.
마커스 J. 보그 지음/민경찬·손승우 옮김, <마커스 보그의 고백: 기억에서 회심으로, 그리고 확신으로>(룩스문디, 2025. 07. 3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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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가 넘은 마커스 보그의 자서전적 회고록의 일부이다.
미국에서 책이 출판된 년도는 2014년이니, 지금부터 11년 전이다.
그런데 마커스 보그가 말하는 미국 그리스도교의 분열은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교의 분열과 매우 유사하다.
아마 한국의 그리스도교에는 샤머니즘적 그리스도교인을 첨가해야 할지 모르지만,
마커스 보그가 새롭게 정의하는 다섯 범주의 그리스도교인 중
나 자신은 어디쯤 속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보수 그리스도교와 진보 그리스도교는 상반되며 결코 양립할 수 없어 보인다.
양극단의 교인들은 서로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무오설에 근거한 문자주의적 읽기와 성서의 역사-은유적 해석은 건널 수 없는 강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중요한 사람들과 지금의 삶에서 이뤄지는 변화가 더 중요한 사람들,
죄의 용서가 가장 절실한 문제인 사람들과 인간이 처한 다양한 곤경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행위와 삶의 양식은 너무나도 다르다.
성령 충만과 하나님의 은혜, 축복의 말씀을 사모하며, 낙태와 동성애를 반대하고 혼전 순결을 강조하며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신앙을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것을 매우 참된 신앙의 소유자라고 믿는 그리스도교인과 온 사회에 공의가 물 같이 흘러서 공공의 선을 확보하고,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교가 비폭력을 가르쳤기에 전쟁과 온갖 폭력을 반대하면서 평화를 주장하며, 평등한 세상, 모든 존재가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믿는 그리스도교인은 서로 만나서 대화하기 어렵다.
마커스 보그는 자신이 비교적 온건했던 어린 시절 관습적인 그리스도교에서 시작해서 나이가 들며 진보 그리스도교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한국 사람인 나는 비그리스도인에서 시작해서 어쩌다 교인이 되었고, 잠깐 보수적인 그리스도교인이었다가 확신 없는 그리스도교인을 지나 지금은 진보 그리스도교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도 여러 방향에서 계속 더 진보하고 있다.
- 향린 목회 27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