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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이유 없이 사는 삶

by phobbi posted Aug 01, 2025 Views 20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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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8-01

2025. 08. 01.

 

카푸토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신비이며, 그 영광은 우리가 우주적 유희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을 긍정한다는 데서 기쁨이 비롯된다고 말할 것이다(John. d. Caputo. Specters of God. Anatomy of the Apophatic Imagination.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22. p. 310) 카푸토는 여기서 일종의 탈중심화, “반성이라는 현상에 대한 우주시론적(cosmopoetic) 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ibid., P 310.) 대부분의 철학 전통은 우리가 사유하는 우주 속 우리의 위치라는 신비에 직면하며 여기에서 우리가 사유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낸다 그 자신을 사유한다. 왜냐하면 반성 이전에이미 우리에게 생각하도록 주어진 어떤 것이 거기에 존재하기때문이다.(ibid., P 310.) 우리가 존재와 사유 사이의 간격 안에 거주한다면, 동시에 우리 인간은 세계가 자기 스스로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던 세계의 한 조각이다”(ibid., P 310.)도 사실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러한 현사실적 삶의 해석학은 그러한 세계가 더욱더 신비롭다는 신비를 계속 만들어낸다”(ibid., P 312.).

 

유한한 우주의 일부로 존재하며, 우주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 있다는 신비스러움은 고유한 실존적 미덕을 동반한다. 이는 우리의 세계--존재의 연약함 속에서 우리의 삶의 종교적 차원을 새롭게 음미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민감성, 통찰, 안목을 요구한다(ibid., P 314.).

 

범재신론의 종말 이후, 유한한 우주에 묶인 신에게는 어떤 기회들이 있을까? 카푸토는 데리다가 어느 정도 예언한 것처럼, 주권적 힘 없이 그 스스로를 자신의 동일성에서 해체하는 필멸의 신이라는 사유를 제시한다(ibid., P 318.). 그러한 신의 운명은 인간이 그 유령적 부름에 어떻게 응답하는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이 이야기에서 신의 이름은 실체의 이름이 아니라 경험이며, 사물이 아니라 관계이고,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행위이다”(ibid., P 316.). 신의 부재 속에서 우리는 신의 일을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무조건적인 가치에 합당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ibid., P 320.).

 

이를 위해 우리는 에크하르트가 장미를 보았던 것처럼 세상을 보아야 한다. 이유 없이 세계를 보는 것은 아포파시즈적 상상력을 재구성하고(cf. ibid., P 322.) 세계에 무조건적인 관계(respect)의 영역을 입히는 것이다(ibid., P 323.). 그러므로 하이데거에게 세계의 세계화는 이유 없이 사는 것”(ibid., P 324.)을 요구한다. 이는 세계의 도래와 소멸에 대한 알지 못함과 깊은 존경의 고백이며 세계가 어디로부터 왔고 또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기도이기도 하다. 세계의 약속에 대한 이 기도와 함께 카푸토는 결국 “‘급진 신학진정한종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없는 엄격한 학문적 기획이라는 반론을 잠재울수 있다고 말한다(ibid., P 324.). 정말로 그렇다. 이는 설교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그들의 단조롭고 계산적인 삶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실상 우리는 이유 없이 세계를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는 사물을 최적화해야 할 재원으로 취급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아니, 중독되어 있다. 그런 우리가, “무언가를 소중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의 소멸성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신시학적(theopoetic) 태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ibid., P 328.). 신시학적 기도와 설교는 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을 그것이 존재하는 동안 긍정하며(ibid., P 330.), 그렇게 함으로써 필멸의 신 안에서 소박한 기쁨”(ibid., P 14.)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급진 신학자들이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상상해야 할 수도 있다.

 

유리 스흐레이브르스 지음/윤동민 옮김, <카푸토 따라잡기: 유령과 망령들에 대하여>(도서출판에라스무스, 2025. 04. 30.), 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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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계--존재의 연약함 속에서

우리의 삶의 종교적 차원을 새롭게 음미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민감성, 통찰, 안목을 요구한다!”

 

깊이 묵상해 볼 말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대신 이유 없이도 사는 삶속에서 소박한 기쁨을 찾고 누리며,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경이로움과 영광스러운 신비를 체험하고,

우주적 유희에 함께 동참하는 능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무한을 갈망하기보다, 유한함 속에서, 연약함 속에서도

늘 상대에게 열려 있어서

우주와 하나님이 만드시는 시()의 노래를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돈 큐핏이 말한 대로 태양의 윤리(Solar Ethics)를 구현하면서 살기를!

 

 

- 향린 목회 27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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