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7. 26.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탈무드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탈무드의 오래된 구절(『브라코트 편』33b)에는 ‘랍비 하니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제외한 모든 것은 신의 손안에 있다고 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신을 경외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 - 우치다 다쓰루 역, 『관념에 도래하는 신에 대하여』
인간은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로 창조되지만 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스스로 발견한다는 의미인데요. 즉, 창조주는 인간을 영적으로 성숙한 상태로 초기 설정하지 않고 영적으로 성숙할 가능성만을 인간에게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름이 들리는 사람과 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았기에 부름이 들린 예외적인 사람들을 예언자라고 불렀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거점으로 삼아 일신교 신앙은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저는 일신교의 발생에 관한 이야기에 일종의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일신교가 표준 장착된 곳으로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일신교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도와달라는 부름을 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끊임없이,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오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도와 달라는 부름에 응답하는 인간이 등장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지만 전지전능한 하느님과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는 기능적으로는 똑같습니다. 모두 도와달라는 구난 신호를 보내고 있었고 그것을 수신해줄 사람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난 신호는 매우 듣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알아들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들은 것을 통해 인류를 윤리적으로 조금은 향상시켰습니다. 그런 점에서 맹자의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 이야기와 선지자에게 호소하는 하느님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둘 다 그것이 인(仁)의 단서가 되고 인간의 인간성의 기점이기 때문입니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용기론>(알에이치코리아, 2025. 05. 26.), 227-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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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선생의 글에는 윤리학을 제1철학으로 삼았던 레비나스 사상의 향내가 깊이 배어 있다.
레비나스에게 남(他者)은 우리가 담당해야 할 도덕적 책임의 근원이고,
타자의 얼굴을 마주할 때 윤리적 의무가 발생한다.
특히 지금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을 마주할 때는 더 그렇다.
타자의 구난 신호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아듣는 일이 기독교 신앙의 밑절미다.
예수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영원한 삶을 말씀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난 당하는 이웃의 친구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됨이 증명되는 것이다.
- 향린 목회 26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