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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세계의 무한함 앞에서

by phobbi posted Jul 19, 2025 Views 23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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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7-19

2025. 07. 19.

 

종교적 지성이란 크기를 경외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도량형으로는 결코 측정할 수 없고 사유할 수 없는 것과 마주했을 때 자신의 무력감과 초라함을 직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무력하고 초라한 존재라고 해서 위축되거나 무력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과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내가 욕망하는 것은 그것에 마음을 빼앗길 만큼 큰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그 집착에서 벗어나면 어느 정도 쿨해질 수 있습니다.

 

구원은 본래 인간의 도량형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구원받는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부처를 믿지 않아도 세계의 무한함을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겁니다. ‘큰 것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을 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무지의 즐거움>(도서출판 유유, 2024. 11. 4.) 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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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심이야말로 종교인이 지녀야 할 감각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이것을 "절대 의존의 감정"(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이라고 했다.

부분인 내가 크기를 알 수 없는 전체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

존재 자체가 신비로 다가오고,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소중히 다루는 것,

자기의 유한성을 깨닫고, 한편으로 거기에 머물 줄도 알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조금씩이라도 매일 넘어서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이 욥에게 이렇게 물었을 때,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무엇이 땅을 버티는 기둥을 잡고 있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느냐?”(욥기 383-6)

 

아마 욥은 그때 자기의 유한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노자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큰 네모는 귀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은 듯 하고, 큰 음악은 소리가 없고,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41장 중에서)”

 

얼마나 큰지도 헤아릴 수 없는 모름 앞에서

인간의 앎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깨닫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작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수(死守)할 것이 사소(些少)한 것이 되고, 그럴 때 인간은 해방되고 구원을 얻는다.

 

 

- 향린 목회 25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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