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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14가지 깨어 있는 마음 수행

by phobbi posted Jul 18, 2025 Views 30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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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7-18

2025. 07. 18.

 

1. 우리는 광신과 편협함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교리나 이론 이데올로기, 심지어 붓다의 교설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우상화하거나 거기에 속박되지 않겠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지혜와 자비를 깊이 보고, 전진하도록 도움을 주는 방편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싸우거나 죽이기 위한 교리가 아닙니다.

 

2. 우리는 견해화 잘못된 인식의 집착에서 고통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좁은 소견이나 현재의 견해에 묶이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통찰과 경험에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 수행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지식이 무상하거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진리는 삶 가운데 드러납니다. 우리는 일평생 배울 준비가 되어 있고, 매 순간 우리 안과 주위의 삶을 관찰하겠습니다.

 

3. 우리는 타인에게 우리의 생각을 강요할 때 고통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권위, 위협, , 선전, 세뇌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믿는 것과 결정하는 방식이 우리와 다른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이 깊은 수행과 자비로운 대화를 통해 광신과 협소한 마음을 버릴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4. 우리는 고통의 본질을 깊이 보는 것이 자비를 키우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여러 방법-개인적 접촉이나 이미지, 소리 등-을 모색하여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의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이 자비와 평화, 기쁨이 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5. 우리는 참 행복이 부와 명예가 아닌 평화와 연대, 자유와 자비심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명예와 이익, 부와 감각적 쾌락, 그리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 죽는 동안 재산을 축적하는 일에 두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살고,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물질을 궁핍한 사람들과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몸과 의식에 독성을 일으키는 알코올, 마약 등과 같은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깨어 있는 마음 소비를 수행하겠습니다.

 

6. 우리는 화가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고통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화가 생길 때 화의 에너지를 돌보고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있는 화의 씨앗을 인식하고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화가 생길 때, 우리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깨어 있는 마음 호흡과 깨어 있는 마음 걷기를 수행하고 우리의 분노를 인정하고 감싸안으며 깊이 보겠습니다. 우리는 화의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겠습니다.

 

7. 우리는 삶이란 이 순간만 의미가 있고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사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삶의 매 순간 깊이 살 수 있도록 수행에 전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산만하게 하거나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 현재의 욕심, 분노, 시기 등에 이끌려 살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깨어 있기 위해 깨어 있는 마음 호흡을 수행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안과 주위에서 경이롭고 신선한 치유의 요소들과 접촉하고 우리 안에 있는 기쁨과 평화, 사랑과 이해의 씨앗을 키우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의식에 내재된 변화와 치유의 요소를 촉진하겠습니다.

 

8. 우리는 의사소통의 부족이 분리와 고통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비롭게 듣고 다정하게 말하는 수행에 전념하겠습니다. 우리는 판단하거나 반응하지 않고 조화를 깨뜨리거나 공동체를 파괴하는 말을 삼가고 깊이 듣겠습니다. 우리는 혼신을 다해 의사 소통을 잘 유지하고 아무리 작은 갈등이라도 조정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9. 우리는 고통과 행복이 말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희망과 신뢰를 주는 말, 진실하고 건설적인 말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한 말을 하거나, 분리나 증오를 낳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하는 소식을 퍼트리지 않고, 확신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안전이 위협당해도 정의롭지 못한 일에 거리낌 없이 말하겠습니다.

 

10. 우리는 승가의 본질과 목적이 이해와 자비의 수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를 개인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사용하거나 정치 단체로 만들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는 압제와 불의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당파적인 갈등에 휘말리지 않고 상황을 개선하겠습니다.

 

11. 우리는 주변 환경과 사회에서 큰 폭력과 불의가 자행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에 해를 끼치는 직업을 갖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이해와 자비의 이상을 실현하고 도움을 주는 직업을 선택하겠습니다. 우리는 세계 경제와 정치, 사회 현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에게 삶의 기회를 빼앗는 회사를 지지하지 않고 책임감 있는 소비자와 시민으로 행동하겠습니다.

 

12. 우리는 전쟁과 갈등으로 많은 고통이 초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비폭력과 이해, 자비를 기르고, 평화 교육과 깨어 있는 마음 명상, 그리고 가족과 공동체, 국가와 전 세계와 화해를 추구하겠습니다. 우리는 살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살인을 용인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보호하고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승가와 함께 깊은 성찰을 수행하겠습니다.

 

13. 우리는 착취와 불평등, 약탈, 압제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비를 키우고 사람과 동물, 식물과 광물의 안녕을 위해 일할 방법을 찾겠습니다. 우리는 궁핍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나눔으로써 관대함을 실천하겠습니다. 우리는 약탈하지 않고 타인의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재산을 존중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타인이나 다른 생명체들의 고통으로부터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14. <재가자들을 위해> 욕망에 의한 성관계는 외로움을 없앨 수 없고 더 많은 고통과 좌절, 고립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호 이해와 사랑, 오랜 헌신이 수반되지 않은 성관계는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성관계를 통해 앞으로 초래될 고통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나와 타인의 권리와 헌신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성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연인이나 가족이 성추행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을 존엄하게 대하고 보살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의 생명 에너지를 지키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책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새로운 존재들을 불어넣은 세상을 명상하겠습니다.

<출가자들을 위해> 비구와 비구니들의 염원은 자신들이 세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온전히 떠날 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비를 실천하고 타인이 스스로 보호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외로움과 고통은 두 몸이 결합 된 성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이해와 자비의 실천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관계가 수도자의 삶을 파괴하고 생명체를 돕는 우리의 이상을 막고, 타인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몸을 억압하거나 학대하지 않고, 단순한 도구로 여기지도 않으며 정중히 대하겠습니다. 우리는 보살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생명 에너지(, , )을 지키겠습니다.

 

틱낫한 지음/김종만 옮김, <틱낫한의 깨어 있는 마음수행>(열린서원, 2021. 02. 15), 9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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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이 알려주시는 14가지 깨어 있는 마음 수행이다.

 

우리는 이렇게 이웃 종교들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성숙할 수 있다.

부처님 대신에 하나님, 보살 대신에 예수님, 승가 대신에 교회, 마음 명상 대신 기도, 자비 대신 사랑, 재가자 대신에 교인, 출가자 대신에 목사라고 바꿔서 읽으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다를 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변화이고, 성숙이다.

 

 

 

 

- 향린 목회 257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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