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7. 14.
아무리 장서(藏書)가 많더라도 정리되어 있지 않은 도서관은 책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아도 정리가 잘된 장서만큼 효용이 없는 것처럼 지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많은 지식이라도 자신의 사고(思考)로 철저히 다듬은 지식이 아니라면 양은 훨씬 적어도 다양하게 숙고한 지식만큼 가치가 없다. 알고 있는 지식을 모든 방면으로 조합하고, 모든 진리를 다른 진리와 비교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지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하고, 그 지식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알고 있는 것만 면밀히 숙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면밀히 숙고한 것만 정말로 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마음대로 읽기와 배움에 힘쓸 수 있지만, 사고는 사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
학자란 책을 많이 읽은 자들이다. 사상가, 천재, 세상 사람을 깨우쳐 주는 자, 인류의 후원자는 직접 세상이라는 책을 읽은 사람을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기본 사상에만 진리와 생명이 깃든다. 우리는 그것만을 제대로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독서에서 얻은 남의 생각은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이나 남이 입다가 버린 옷에 불과하다. ~~ 그러므로 자신의 사고의 샘이 막혀 버렸을 때만 독서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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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습득한 진리는 마치 의수나 의족, 의치, 밀랍으로 만든 코나 기껏해야 남의 살로 성형 수술한 코처럼 우리 몸에 그냥 붙어 있기만 할 뿐이지만, 독자적 사고를 하여 얻은 진리는 자연스러운 수족과 같은 것이므로, 그것만이 정말로 우리의 것이다. 사상가와 단순한 학자의 차이도 이런 사실에 기인한다. ~~
언제든지 책상에 앉아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생각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각도 사람과 마찬가지라서, 언제든지 마음대로 불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이제나저제나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라 해도 항상 독자적 사고를 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독서할 때보다 현실 세계를 바라볼 때 독자적 사고를 할 계기와 기분이 훨씬 자주 일어나므로 책을 읽느라 현실 세계의 모습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원래의 순수성과 힘을 지닌 구체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은 사고하는 정신의 자연스러운 대상이라서, 아주 쉽게 정신을 깊이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생각한 것만 진정한 가치가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사상가는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사고하는 사람과, 남을 위해 사고하는 자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전자의 사람들이 참된 사상가이며, 단어의 이중적 의미에서 독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들이야말로 참된 철학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들 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은 바로 사고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사람들은 소피스트들이다. 그들은 그럴듯하게 드러내 보이기를 원하고, 세상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들은 이런 점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두 가지 부류 중 어디에 속하는지는 그들의 모든 행동 방식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홍성광 옮김,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유문화사, 2021. 07. 30. 초판 8쇄 발행), 39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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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사유하여 단련된 지식, 몸에 밴 지식이 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자기 삶에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으로부터, 몸소 겪은 것에서부터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남에게 들은 것, 책에서 읽은 것도 스스로 다시 곱씹어야 한다.
우리의 독서가 게으른 독서가 되는 이유는 사유하지 않기 때문인데,
나 스스로도 게으른 독서에서 멈춰 버리기에
실제로 독자적 사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부끄럽게도 주워들은 것을 바로 내뱉는 경우도 있다(道聽而塗說).
쇼펜하우어는 숙고의 시간은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요즘 아침 산을 오르며 종종 체험하게 된다.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을 때보다,
천천히 산을 오르는 발걸음을 타고 이런저런 생각이 솟아난다.
좀 더 면밀히 숙고하고 되씹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 향린 목회 25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