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7. 10.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평탄한 길을 걷는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요. 오히려 모종의 심연에 직면해 목숨을 걸고 그 심연을 뛰어넘는 것에 가깝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에드거 앨런 포나 아서 코난 도일을 읽으며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배웠습니다. 그 책들을 읽고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오귀스트 뒤팽이나 셜록 홈즈처럼 생각하는 것이라고 머릿속에 입력했습니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명탐정의 추리야말로 논리적인 사고 과정의 모범이 아닌가 싶습니다. 난제가 제시되면 탐정은 그것을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험과는 전혀 다릅니다. 정답을 알고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건 현장에 여러 가지 물증 – 족적, 혈흔, 담배꽁초 같은 – 이 남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범인이 문제를 내기 위해 현장에 의도적으로 남기고 간 게 아닙니다.
탐정은 사건 현장에 남겨진 단편을 바탕으로 추리하고 그 귀결로서 정답을 발견합니다. 추리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단편적 사실을 늘어놓고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가설을 구축하는 일입니다. 그 가설이 아무리 비상식적이고 믿기 어려워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은 그것뿐이라는 확신이 들면, 탐정은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단언합니다. 이는 논리라기보다 오히려 ‘논리의 비약’입니다.
실제로 학술적인 지성이 하는 일은 그와 비슷합니다.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훌륭한 지적 달성을 완수해 인류의 지적 진보에 공헌한 사람들인데요. 그들의 공통점은 보통 사람들은 흉내 낼 수 없는 논리의 비약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눈앞에 흩어져 있는 단편적인 사실들을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은 ‘이것밖에 없다’는 추리에 근거해 전대미문의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계급 투쟁, 자본주의 정신, 그리고 반복 강박은 논리의 비약의 산물입니다. 물론 같은 단편을 봤다고 해서 누구나 같은 가설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범한 지성의 경우 상식이나 편견이 논리의 비약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탁월한 현자가 탁월한 이유는 도약력에 있습니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용기론>(알에이치코리아, 2025. 05. 26.), 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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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촌티 가득한 나는 서울 불광동 큰 이모네서 한 달을 보냈다.
대학생, 고등학생 사촌 형들이 있었고,
우리 집에는 없는 책들이 있었는데,
그중 이원복 교수의 만화책 <사랑의 학교>가 있었다.
책이라곤 한국 위인전집 10권, 세계 위인전집 10권이 전부였던 내게
짧은 에피소드로 이어진 아주 재미있는 책이었고,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는 이내 형들이 읽던 삼성당에서 나온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으로 이어졌다.
<암굴왕>, <쿠오레>, <톰소오여의 모험>, <보물섬>, <로빈훗의 모험>
<왕자와 거지>, <로빈슨크루오소우>, <장발장>, <아라비안나이트>
<서유기>, <십오소년표류기>, 등등
신세계(新世界)였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 학교 도서관에서 모리스 르블랑의 <기암성>을 발견했고,
추리소설에 빠져 들었는데, 에드가 엘런 포의 <검은 고양이>와
친구 집에 있던 셜록 홈즈 시리즈 40권을 단숨에 해치웠다.
스티븐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감에 따르는 용기입니다”(위의 책 31.)라고 말했다는 데,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내리는 결정적 선택은 단순하고 평평한 논리 위에 세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이것이다’라는, 그렇게 감이 오는 그 무엇, 즉 직관적으로 느끼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런 감수성은 우치다 선생이 말한대로 학교에서 치는 시험으로는 길러질 수 없다.
합리적 사고를 위해 수학의 논리를 배워야 하고, 사고력 훈련이 매우 필요하지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고력 훈련은 감정과 자유의지, 몸의 체험을 종합한 그 무엇이어야 하고,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행동하는 사회적 몸의 훈련이어야 한다.
- 향린 목회 249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