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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하나님의 마음에 추임새 ㅣ 김지목 ㅣ 2025-07-06

by 김지목 posted Jul 06, 2025 Views 141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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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7-06

하늘뜻펴기 20250706 성령강림후4

 

하나님의 마음에 추임새

9:3-9,23-26, 2:1-11, 15:1-10

 

올해 우리교회 국악선교회 예향은 3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2025년 목회계획을 하면서 예향과 국악예배를 주제로 하늘뜻펴기를 하기로 했고, 오늘 세 번째에 이르고 있습니다. 첫 번째 하늘뜻펴기는 근현대 개신교의 150여년에 이르는 선교역사 과정에서 나타난 토착화 예배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3세계 피선교지 교회가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겠다고 선언한 주체적인 신앙고백이 우리 향린에서는 국악예배로 표출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예향 30주년 기념 하늘뜻펴기 두 번째는, 우리음악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시김새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음악의 아름다운 멋과 맛깔스러움이 되는 시김새를 훈련하면서 우리의 국악예배를 보다 국악예배답게 만들어가고, 또한 지난 70여년 동안 우리 공동체에서 오래도록 삭혀온 향린정신의 시김새를 멈춤 없이 이어나가게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는 추임새입니다. 추임새 또한 우리음악의 멋스러움과 맛깔스러움입니다. 이것의 사전적인 뜻으로 어원을 추적하면, 먼저 추다라는 동사와, 접미사로서 ”, 그리고 기색 또는 양상을 뜻하는 로 분석됩니다. 여기에서 추다라는 동사가 조금 생소한데, 이는 밀다, 돕다는 의미로, ‘치밀어서 올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다”, 추다”, 맥을 못춘다는 등의 용례가 있고, “온 방을 다 추어도 그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하는 것처럼, 숨은 물건을 찾기 위해 뒤지는 것, 들추는 것이라는 의미로 추다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추임새는 조의하여 흥을 돋우는 기색또는 돕는 기운의 모양”, “추켜 세워주는 것으로 정리하여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사전적으로 분석을 하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국악찬송을 가까이 해온 우리는 이것 추임새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소리꾼(창자唱者)의 노래 중간중간에 듣는 청중이 즉흥적으로 얼씨구” “잘한다” “그렇지등의 소리를 내어서 소리꾼과 서로 교감하는 것입니다.

 

음악을 선보이는 공연에서 청중이 추임새로 연주자의 연주영역에 간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음악 외에 찾아보기 힘든 고유한 특징입니다. 여백의 미와 자유로운 선율이 특징인 우리음악은 연주자에게는 시김새를, 소리를 듣는 청중(청자聽者)에게는 추임새를 허락합니다. 추임새로 청중은 연주자의 예술성에 적극적으로 반응함으로써 응원하고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음악을 완성하는 주체가 됩니다. 이렇게 주체와 객체의 구분을 넘어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추임새의 매력입니다.

 

이러한 추임새는 한국의 고유한 마당문화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연주자의 예술성을 지극히 존중하고 집중력을 극대화하는 서양문화의 무대와 다르게, 우리네 민속문화 마당에서 실현되고 꽃을 피웠습니다. 마당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은 평등성과 즉흥성입니다. 마당은 위아래, 앞뒤가 설정되지 않은 곳입니다. 둘러앉은 곳에서 누구나 언제든지 일어서서 중심을 전유할 수 있는 그 마당에서 추임새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추임새를 한다”, “추임새로 흥을 돋구는 판이 되었다했을 때는 그곳을 마당판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이곳은 제대와 강대가 있는 무대가 있습니다. 이러한 무대의 설정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회중의 집중력을 고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시작할 때 예향의 입례연주 속에서 예배위원이 등단을 하고 있는데, 이때부터 무대적인 설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예배는 Worship, 곧 우리의 가장 고귀한 것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기에 이것을 상징하는 문화적 행위로써 무대의 설정은 예배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흩어져서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살아온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는데, 각자의 형편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십자가를 향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때는 마당보다는 무대가 적절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예배는 무대 일방향에 만족될 수 없습니다. Gottesdienst, 곧 하나님의 섬김이 그리스도교 예배의 중요한 의미가 됩니다.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은 예배에 임한 백성이 구원을 얻도록 섬겨주시는 분입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섬김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를 뜨겁고 새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배공동체를 섬겨주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로 오시는 하나님을 모시는 자리, 그곳은 마당판이 어울립니다. 마당판은 풍악소리에 맞춰 인간이 신과 함께 한 바탕 놀며 해방감을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예배에서 삼위일체의 영과 함께 교감할 수 있는 마당판의 설정을 우리는 인지해야 합니다. 또한 그렇게 섬김을 받은 우리는 세상으로 다시 흩어져서 세상을 섬기는 주체가 됩니다.

 

이와같이 역동적인 우리 예배는 예배당, 이곳의 공간적 변형, 모이는 곳에서 흩어지는 곳을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적 전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생명 정의 평화이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예배공간으로서 무대, 또한 생명 정의 평화로 세상을 섬기기 위해 흩어지는 예배공간으로서 마당은 매우 적절한 기획입니다. 국악찬송을 부르는 우리 국악예배는, 우리의 예배를 마당판으로 전이시킬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것입니다. 추임새가 보장된 까닭입니다.

 

예향 30주년을 기념하면서 하늘뜻펴기를 나눌 때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국악예배를 담당하고 있는 예향의 마음을 교우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예향과 하늘뜻펴기 주제를 두고 때때마다 이야기를 나눕니다. 국악 전문연주자와 비전공자로 구성된 우리 예향이 향린에서 국악을 연주하며 예배에 봉사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특별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우리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특별한 매력도 있고, 사회문화적으로 외면 시 되는 국악을 정기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도 특별합니다. 신앙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배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의미가 예향에게 소중합니다.

 

이러한 이유들은 특별하게 보일지라도 예상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늘뜻펴기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지금 우리의 예향은 추임새에 목말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이제 향린에서 국악을 연주하는 신앙인이 될거야!”라고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교회가 추임새를 참 잘하고 또 많이 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는데, 어떤 이유인지 지금은 예전만 못하다고 아쉬워합니다. 주객도식으로 일관된, 경직된 서구식 예배문화를 극복한다는 목표는 예향의 전신이었던 활동 때부터 가졌던 것인데, 이제 30주년을 지나면서 다시 추임새가 활발한 예배공동체가 되기를, 예향은 갈급해하고 있습니다. 예향 30주년은 우리 교회 국악예배의 30년의 역사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국악예배의 문화적 담지자인 모든 교우들이 예향과 함께 앞으로 추임새 공동체를 위해서 예배 때마다 마음을 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추임새로 우리의 예배를 위해 봉사하는 예향을 추켜세워주고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국악 연주자로서 추임새의 멋과 맛을 잘 알고 있는 예향과 대화하면서 추임새의 의미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흥이 넘쳐서 표출되는 추임새, 이것이 지닌 힘이 연주자에게 또 모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연주하면서 직접 체험한 예향이었기 때문입니다. 추임새가 가득한 연주에서 느껴지는 하나 됨, 역동성을 우리 공동체가 자주 체험할 수 있기를 예향은 고대합니다.

 

그럼에도 예향은 고대에 이어서 이내 고심에 빠집니다. 사실 추임새가 쉬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속문화의 마당문화보다 서구문화가 대세인 이 시대의 비극은, 자연스럽기만 했던 추임새가 어느새 어쩔 줄 모르는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추임새를 잘 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청해야 합니다. 경청의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합니다. 여기에 연주곡의 리듬을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것, 연주자의 마음에 동화할 수 있어야 자연스러운 추임새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경청하고, 리듬을 맞추고, 연주자의 정서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음악을 완성한다고 하는데, 추임새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음악적 감각이 회중에게도 요구됩니다. 이 능력을 위해서 경청과 리듬과 정서를, 의식하고 익히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추임새 요건은 다만 추임새를 연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이들과 관계하는 일에 있어서도 매우 유익한 공감의 능력입니다. 연주자가 같은 음을 내더라도 경쾌한 마음으로 낼 때와 슬픈 정서로 연주할 때 다르게 소리 나기 마련입니다. 그 예민한 차이를 알아차릴 만큼 타자에게 집중해 보는 것, 우리가 타자와 관계할 때 너무나도 필요한 이 능력을 위해서 추임새의 기회가 될 때마다 의식하고 훈련할 만한 것이 아닌가요?

 

우리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동화되는 것, 신앙의 목표를 이만큼 간명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정, 그 구원의 리듬에 나의 삶을 맞추어, 나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 이것을 위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추임새의 감각이야말로 신앙인이 신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론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자 합니다. 그분의 삶에 구원이 있는 까닭입니다. 본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나의 본()으로 삼아서 나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구현한다는 의지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동화되는 솟구치는 순간들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의 사상을 뒤흔드는 경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이웃사랑의 리듬을 따르면서 경험되는 자기초월의 체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평화를 누리는 경험들. 이러한 체험들은 그분을 본받는 삶의 과정에서 순간순간 뜨겁게 솟구치는 신앙의 신비입니다. 저는 추임새의 감각이 타자와 공감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 이상으로, 신앙의 영역에서도 퍽 유익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20세기 히브리 사상가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그의 저작 <예언자들>에서, 하나님의 정념(情念, pathos)에 동조한 성서의 예언자들의 동정(同情, Sympathy)”에 감탄하며 성서의 예언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열정, 정념에 같은 심정으로 하나 되어 반응한 예언자들의 동정으로, 예언자들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때 하나 되었다 함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가 되거나 나의 존재가 용해되어 사라져 버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의식, 인격, 영감과 하나 됨을 뜻합니다. 이러한 하나 됨, 동정이, 동정의 상태를 성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하나가 되는 것이 예언자 정신의 본질과 핵심임을 설파합니다.

 

성서에서 예언이란 미래를 점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언은 인간의 아픔을 표현하라고 하나님이 빌려주신 말이며,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만나는 접촉점입니다. 예언자는 그 예언으로 하나님의 숨은 모습을 드러내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실하심을 보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예언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예언으로써 하나님이 현존하시기에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헤셀) 이러한 까닭에 예언자는 예언을 하기 위해서 동정곧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지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들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과 동정할 때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초월의 신앙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전 625년경 남유다 멸망이 임박할 때 활동한 예언자 예레미야는 진노의 예언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서 본문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묘사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한 유다 백성의 죄악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토록 진노하시는 분이실까요? 예언자의 하나님은 백성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는 신입니다. 백성이 재난을 당하면 하나님에게도 불행이 수반됩니다. 백성의 안녕에 하나님의 운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명 정의 평화가 무너진 까닭에 백성이 신음하면 그 고통을 고스란히 함께 겪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아픔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예레미야서 본문은 그러한 하나님의 정념과 하나 된 예레미야의 예언으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념과 하나 된, 그래서 하나님과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동정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의 세 본문 말씀은 하나 됨의 주제로 선정했습니다. 빌립보서에서 강조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신앙의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낮추시고(케노시스)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이라야 예레미야가 보여준 동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서의 포도나무 비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과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는 가지들이 하나가 되어 열매를 맺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예언자의 동정(Sympathy)”과 빌립보서의 케노시스”(비우고 낮추심)의 의미를 참고한다면 이 복음서의 말씀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저는 추임새가 우리네 마당에서 유래한 평등문화의 소산임을 밝히면서 우리 예배에 무대문화와 함께 마당문화를 연출하는 문화적 장치로 유의미함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추임새를 잘 하기 위해서는 연주자에게 경청하고, 리듬과 정서를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요함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한 추임새의 감각을 의식하고 훈련하는 것은 타자와의 바른 관계에도 유익할 뿐만 아니라, 신앙의 차원에서, 신앙의 목표인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기재가 될 수 있음을 부족하나마 피력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정념(情念, pathos)에 반응한 예언자의 동정(同情, Sympathy)”,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 그리고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국악예배, 국악찬송을 두고 추임새를 신앙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추임새는 자신을 낮추고 타자의 깊은 곳에 닿도록 나를 연결하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예배 중에 그 사랑이 분출되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희망을 안고 이 시간은 추임새를 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예향의 연주와 함께 소리꾼 오낙영 권사님을 모시고 국악찬송 한 곡을 청해 듣겠습니다. 곡목은 국악찬송가 161고마워요 고마워요입니다.

 

(추임새)

1-3 패턴 : -/ -

12- 패턴 : 얼씨구- / 그렇지-

1-- 패턴 : --

--3 패턴 : --허이

 

1. 고마워요 고마워요 창조의 하나님 고마워요

온누리 만드시고 참생명 주시니 고마워요

삼천리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위에

생명의 꽃 피우는 우리 땀방울 받으셔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창조의 하나님 고마워요

하나님 주신 이 땅 아름답게 가꿀래요

 

2. 고마워요 고마워요 사랑의 예수님 고마워요

미움을 물리치고 참사랑 주시니 고마워요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신 말씀따라

사랑의 꽃 피우는 우리 땀방울 받으셔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사랑의 예수님 고마워요

나누고 섬기며 예수님을 따를래요

 

그리스도교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입니다. 사랑으로 우리 서로를 추켜세우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또 세상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추임새를 잘 넣을 줄 아는 선교 공동체, 하나님이 우리를 섬겨주시듯이 우리 또한 세상을 성심으로 섬기는 추임새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잠시 침묵합시다.

 

.............

 

(파송사)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우리 공동체를 머무르게 합시다.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정념(pathos)에 예언자들처럼 반응하며,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성령을 역사하심으로 우리 신앙의 추임새가 세상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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