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뜻나눔

경계선 위의 신학자

by phobbi posted Jul 06, 2025 Views 265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5-07-06

2025. 07. 06.

 

종교실현서문에서 저는 경계선이야말로 지식을 습득하기에 최적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제 삶에서 어떤 사상이 우러나와 발전해왔는지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저는 경계선 개념이 제 지성 발전의 전 과정을 설명하는데 안성맞춤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생의 거의 모든 지점마다 두 가지 가능성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두 가지 모두 완전히 만족할 수도 없었고, 한쪽을 위해서 다른 한쪽을 강경하게 반대하지도 못했습니다. 사유를 하려면 새로운 가능성을 기꺼이 수용해야만 하기에, 경계선 위에 설 때 사고하기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경계선 위에 서는 일이 실제로는 고달프고 위험한데, 그것은 우리 삶이 끝없이 결단을 내려야하고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배제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제 운명과 제 일은 경계선 위에 서려는 성향과 이 성향의 긴장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폴 틸리히 지음/김흥규 옮김, <경계선 위에서>(동연, 2018. 03. 09.), 33.

 

=====================================

 

양극단 어느 한쪽으로 빠져들지 않고,

너무나 쉽게 한쪽을 편들지 않으며,

양쪽 사이에서 긴장을 지닌 채,

견제와 균형을 이루되,

늘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며 열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틸리히의 신학적 작업의 위대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철학과 신학, 이성과 계시, 존재와 비존재, 본질과 실존, 보편과 특수,

믿음과 의심 사이를 서로 끊임없이 엮으려고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궁극적 통합을 이루려 했다.

 

틸리히에게서 배워야 한다.

 

당신은 틸리히와 함께 사유할 수 있고, 또는 그를 거부하면서도 사유할 수 있지만, 그 없이는 사유할 수 없다.”(You can think with him or against him, but not without him. John E. Smith. 1921-2000).

 

 

 

 

- 향린 목회 245일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