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6. 30.
자, 아무튼, 나는 서품받은 다음 날 이 본당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노인 신부님이 내게 말씀하셨어요. “고백성사를 주겠나?” “그러죠.” “내 고해실에 가서 앉게.”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내가 거룩한 사람이로군. 그분 고해실에 앉다니.” 나는 세 시간 동안 고백을 들었습니다. 성지 주일이라 부활 판공성사를 보려는 사람들도 붐볐죠. 나는 우울해져서 나왔는데, 들은 고백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나도 이미 예상했던 것이고 어느 정도는 나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의 반향이었으니까요. 어떤 고백에도 충격받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이 나를 우울하게 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상투적인 경건한 말 몇 마디밖에는 해 주지 않고 있다는 자각이었습니다. “성모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이런 경건한 상투어들이 암을 조금이라도 치유할까? 내가 다루고 있는 이것이야말로, 깨달음과 현실의 결핍이야말로 암인 것이다. 그래서 그 날 나는 스스로 굳게 맹세했습니다. “배우리라. 배우리라. 그래서 일이 끝날 때면 ‘신부님이 해 주신 말씀은 절대로 옳지만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라는 말이 나에게 해당되지는 않도록 하리라.”
깨달음, 통찰, 전문가가 되려고 – 여러분은 곧 전문가가 되겠죠 – 심리학 과정을 이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을 관찰하기 시작할 때, 자신을 살펴보기 시작할 때, 저 부정적인 감정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할 때, 자기 나름으로 그것을 설명할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를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덩치 큰 악당을 다루어야 할 것인데, 그 악당은 자기 비난, 자기 혐오, 자기 불만입니다.
앤소니 드 멜로 지음/김상준 옮김, <깨어나십시오!>(분도출판사 1993초판, 1996 4쇄), 17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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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은 서품을 받고 다음 날 본당에 오셨을 때의 일을 적은 것이다.
젊었을 것이고, 개신교식으로 말하자면 목사 안수 받고 다음날 목회지에 와서 첫 사역으로 고해성사를 받은 것인데(물론 개신교는 고해성사가 없지만), 그때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얼마나 상투적인가를 느꼈던 것이다.
오늘날 목사의 설교가,
심방이나 상담하면서 하는 위로의 말이 또 얼마나 상투적인가?
정말 두렵고 너무 떨리고 부끄러운 일이다.
드멜로 신부님은 끊임없이 공부하리라 마음먹었고,
그 공부의 시작은 역시 자기를 알아가는 것부터였다.
그렇다. 다시금 자기 발밑부터 돌아보아야 한다(再三照顧脚下).
- 향린 목회 239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