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6. 18.
예레미야: 그럼 이제 제가 백성 앞에서 큰 소리로 제 마음을 말하겠습니다. 전쟁에 피를 바치는 것보다 적에게 금을 바치는 것이 좋습니다. 힘 있는 것보다 지혜로운 것이 좋습니다. 사람의 통치자의 종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냐: 갈대아의 노예, 노예와 같은 복종자여. 억압자와의 전쟁을 명령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겠는가?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부인할 것인가?
예레미야: 그러나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이키고 쉬는 가운데 구원을 얻고, 조용함과 신뢰 안에서 힘을 얻으리라(이사야 30:15)”
목소리들
맞아요,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분은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분의 말은 지혜의 말씀입니다.
아니요, 저 사람은 성경을 자신의 목적에 맞추어 왜곡하고 있소.
하냐냐: 이것은 불경한 전쟁, 이스라엘 형제들 간의 분쟁에 대한 말씀이오. 그러나 우리의 전쟁은 거룩한 전쟁이요. 예루살렘의 영원한 이름으로 치러지는 하나님의 전쟁, 하나님의 전쟁이요, 하나님의 전쟁.
예레미야: 하나님의 이름을 전쟁과 결합하지 마십시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어떤 전쟁도 거룩하지 않습니다. 오직 생명만이 거룩합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김윤식·김영호 옮김, <잿더미에서 희망의 불씨를>(동연, 2025. 6. 11.),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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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광기의 시대에 깊은 고뇌 속에서 삶을 보내야 했던
츠바이크는 희곡의 형식을 빌려 예레미야를 소환한다.
전쟁으로 온 땅이 황폐해질 것이 너무 뻔한 데도, 예언자 하나냐를 비롯한 왕실 세력들은 하나님이 평화를 주실 것이라고, 유다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허황된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그들에게 예레미야는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나는 산들을 보고 울며 탄식합니다. 광야의 초원을 바라보고, 슬픈 노래를 읊겠습니다. 그처럼 무성하던 곳들이 모두 황무지가 되었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축 떼의 울음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공중의 새에서부터 들의 짐승에 이르기까지, 다 다른 곳으로 도망하여 사라졌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돌무더기로 만들어서 여우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이 되게 하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무지로 바꾸어 놓아 아무도 살 수 없게 하겠다.”(렘 9:10-11)
오늘날도 곳곳에서 전쟁의 소식이 들려오고, 죽음의 비명 소리가 가득하다.
인류는 언제 이 탐욕의 사슬과 어리석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향린 목회 227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