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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희망의 사유

by phobbi posted Jun 14, 2025 Views 253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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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6-14

2025. 06. 14.

 

루터는 로마서 강의(1516)에서 희망으로 유지되는 사유를 성찰했다. “사도(使徒)는 무릇 사물에 대해 철학자나 형이상학자들과는 다르게 철학하고 사유해야 한다. 철학자는 사물의 현재 모습을 보고 그것의 특성과 본질성(Wesenheit)’만을 성찰한다. 그러나 사도는 사물의 현재 모습, 특성과 본질성에서 시선을 떼어 내 미래를 바라본다. 사도는 피조물의 본질 또는 작용, 수동성, 능동성, 움직임에 대해 말하는 대신 () ‘피조물의 고대(Expectatio Creaturae)’에 대해 말한다.”(인용: Moltmann, Theolgie der Hoffnung, a, a, O., p. 30) 희망하는 이는 자신의 주의집중을 사물의 본질, 기존성 또는 현재성(presentiam rerum)에 두지 않고 그것이 지닌 미래, 장래의 가능성에 둔다. 희망하는 사유는 파악이 아닌 예견 또는 예감으로 이루어진다. 희망은 우리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 전에 가능성의 영역을 열어 준다. “미래의 예감이여! 미래를 기뻐하라, 과거가 아닌 미래를! 미래의 신화를 써라! 희망 안에서 살아라! 축복받은 순간들이여! 그리고 다시 커튼을 드리우고 생각을 단단히 고정된, 그다음 목표로 돌려라!”(Friedrich Nietzsche, Nachgelassene Fragmente 1882-1884, Kritische Studienausgabe, a, a, O., Band 10, p. 602.) 희망 없이 우리는 기존의 것 또는 나쁜 눈앞의 것에 갇힌다. 희망만이 새로운 것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의미 있는 행위를 만들어 낸다.

 

한병철 지음/최지수 옮김, <불안사회>(다산북스, 2024. 11. 28.) 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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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살아도 과거에 묶여 있고,

현재를 살아도 겉핥기에만 머문다.

살았으나 마지못해 살기에 죽음을 사는 것이다.

한편 미래를 두려워하며 불안에 갇혀 사는 인생도 있다.

 

그러나

미래를 기뻐하며 희망하는 사유는

현재를 만들어 내며 살게 한다.

그래서 본회퍼 목사는 약속이 의미라고 말했다.

 

예수가 외친 하나님 나라도 오고 있는 나라였는데,

예수는 지금 여기서 그것을 붙들었다.

사람들에게는 아직 아니었으나, 그에게는 이미 왔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며 살 수 있던 것이다.

 

 

 

 

 

- 향린 목회 22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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