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뜻나눔

얽히고설킨 세상만사

by phobbi posted Jun 05, 2025 Views 222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5-06-05

2025. 06. 05.

 

소크라테스부터 하이데거까지 서양철학사는 자기동일자에 의한 타자성의 감축’, ‘나에 의한 타자의 향유라는 기본적인 지향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 기본적 지향성은 레비나스 이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신체와 사고의 심층까지 뿌리 깊게 내려 있습니다.

 

존재론의 제국에 외부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있다/없다라는 이원성 그 자체가 존재론이기 때문입니다. ‘존재론의 제국에 외부있다고 말하는 순간 그 명제의 모든 것이 존재론으로 회수됩니다. 전체성의 이코노미 안에 있는 한 ()-인 모든 것을 이름 짓고 지배하고 정리하고 향유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타동사적인 행위에 취합니다. 나의 이 자기중심적인 양상을 레비나스는 폭력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치 자기 혼자만이 행동하고 있고 세계에서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은 자신의 행동을 수용하기 위해서만 거기에 있는 것처럼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은 폭력적이다. 모든 인과관계는 그 의미에서 폭력적이다. 사물의 제작도 욕구의 충족도 욕망도 대상의 인식조차도. 투쟁과 전쟁도 그렇다. 왜냐하면 타자는 그 취약함을 통해서 포착되고 그 약함이 타자를 배반하기 때문이다.(DI, p. 18)

 

이러한 자기중심적 자기회귀적인 주체를 중심으로 해서 사유된 세계의 -를 레비나스는 외부적인 것이라고 술어화 했습니다. ~~

 

상대방은 그때마다 이미 나와의 관계 안에 들어 있어서 이미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관계는 우리와 음식물의 관계와 유비적입니다. 내가 빵을 먹고 있을 때 빵은 관상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고 표상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다름 아닌 빵을 먹고 있는 나는 그때 이미 빵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나는 빵을 먹고 있지만, 그 빵 덕분에 빵을 먹고 있는 나라는 것이 기초 지어집니다.

 

이 주체와 대상의 얽히고설킴의 정황을 레비나스는 로 산다는 동사를 이용해서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맛있는 수프와 공기와 빛과 풍경과 노동과 이념과 잠으로 살고 있다. 그러한 것은 표상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그것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그것에 의해 살고 있다는 것은 사는 수단이 아니다. (TI, p. 82)

 

우리가 그것으로 사는 바로 그것은 도구와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을 사는 우리에게 이미 달라붙어 있어서 상대를 분리한, 그것과 전혀 관계를 갖지 않는 순수한 나라는 개념은 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

 

로 산다’, ‘를 누린다혹은 양식(nourriture)’와 같은 독특한 술어로 레비나스가 제시하려고 한 것은 나와 상대가 그 기원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를 기초 짓고 있고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얽히고설킴입니다.

 

우치다 다쓰루 지음/박동섭 옮김, <레비나스, 타자를 말하다>(세창출판사, 2023. 06. 20.), 202-205.

 

=============================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렇기에 존재자들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존재자가 먼저 있고, 그 존재자들 사이에서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존재자들이 매번 떠오르는 것이다.

 

실체나 개체로, 즉 명사형으로 표현될 수 있는 존재자들은

사실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어 변하는 행위 속의 한 단면일 뿐이다.

 

세상만사가 얽히고설킴이라는 것!

얽히고설킴 속에서는 좋은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것만도 아니다.

내가 나만도 아니고, 남이 남만도 아니다.

동지가 동지만도 아니요, 적이 적만도 아니다.

이런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정치든 뭐든 실수가 적을 것이다.

 

 

 

 

- 향린 목회 214일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