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27.
“다시 여기네요” 프라하 카렐 대학교 인문학부 건물 3층의 연구실, 그는 내 앞에 놓인 낡고 큰 검정 가죽 의자에 앉아 멋쩍은 웃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33년 전 내가 파토치카 교수님 앞에서 철학사 국가고시를 치르며 진땀을 흘렸던 그 의자일 것이다. 내가 여기서 가르치는 동안 보아 온 여느 젊은이들과 비슷한 생김새, 날렵한 몸매에 짧은 머리칼을 한 이 청년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다. 그러나 그는 내 수업을 들었고, 가끔은 대학 성당에서 내 강론도 듣곤 했던 터라 최근 몇 년간 별 소식은 없었지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빠르게 불붙었으나 진정 타오르지는 못했던 그리스도교 신앙을 등지고 동양 영성의 세계를 발견했다는 소식만 얼핏 들었다. 그는 동양 영성에 깊게 매혹되어 태국인지 스리랑카인지 어느 불교 사원으로 한동안 – 영원할 것처럼 –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한참을 앉아 있다가 그렇게 짧은 문장 하나를 내뱉었다. 그것이 이제 꺼내려는 긴 이야기의 시작인지, 아니면 그간 겪은 일을 동양식으로 짧은 선언 하나로 응축한 것인지는 좀처럼 알 수 없었다. “저는 처음에는 그리스도교가 옳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불교가 옳은 것 같았고, 이제 다시 생각하니 그리스도교가 옳네요”라는 말로 나를 기쁘게 해 주려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다시, 여기”라는 그의 말은 이제 전혀 새로운 의미를 띠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탐색하듯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 있다. 이 젊은 재개종자가 적어도 지금은 더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나섰다. “잘 돌아왔네.” 내가 미소 지었다. 그러다 그가 어떤 생각에 영감을 받았을지 퍼뜩 떠올라 나 혼자 다시 미소 짓고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내가 자네를 환영하는 것은 자네가 우리 양 떼의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어서도 그렇지만, 자신의 인생 여정에 선(禪)의 지혜까지 더한 사람에게 내가 축하를 건넬 수 있어서이기도 해.” 나는 어느 선(禪) 지도자가 자신의 여정과 깨달음의 열매를 훌륭하게 요약한 유명한 문장을 들려 주었다. “처음에 나는 산은 산이고 숲은 숲이라 생각했고, 그러다 산은 산이 아니고 숲은 숲이 아니라 생각했지. 이제 나는 산은 산이고 숲은 숲인 것을 다시 알게 되었네.”
토마시 할리크 지음/최문희 옮김, <고해 사제의 밤>(분도출판사, 2021. 3. 25.) 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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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5:21)
그리스도교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 자기 객관화를 위해서도
그리스도교 밖에서 그리스도교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교 밖에는 자연과학, 세속의 인문학, 이웃 종교들의 풍부한 가르침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진리이신 분이라 하더라도,
그를 이해하고 그의 뜻대로 살아내는 방식과 깊이는 저마다 다를 수 있고,
또 세월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달라야 하기에,
우리는 “건너갔다, 다시 오기”를 반복해야 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가, 산은 산이 아니고 물도 물이 아니며,
산이 물이 되기도 하고 물이 산이 되기도 하는 것을 깨달은 후에
다시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볼 수 있는 이는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간 것이 분명하다.
- 향린 목회 20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