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에 맞선 예수의 정치적 도전

by phobbi posted May 22, 2025 Views 313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5-05-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5. 05. 22.

 

주님의 기도(6:10)의 첫 번째 간구는 나라가 임하게 하시오며, 뜻이 하늘에게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이다. 예수가 추구하는 정치는 매우 포괄적이다. 하나님의 뜻은 당연히 하늘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 땅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과 땅에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다른 용어들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데도 예수는 왜 굳이 현존하는 나라와 갈등을 빚을 수 있는 나라(Kingdom) 같은 정치 용어를 사용했을까? 예수는 그 용어를 별다른 생각 없이 순진하게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의 지배 권력자들과 선명한 대조를 위해 그 용어를 사용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하나님 나라를 간구하는 단순한 기도 행위가 오늘날까지 존재했던 모든 정치 체제를 향한 도전으로 귀결될 때, 이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불행하게도 교회들은 하나님 나라의 그런 도전을 현대적 사고로 이해되는 종교에 국한시키는 타협을 하곤 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도전을 사적이고 가족의 영역으로, 또는 특정 집단의 종교 영역으로 국한시켰다. 간단히 말하면, 폭넓은 정치적 현장 속의 한 부분이 아닌 것으로 국한시켰다. 프랑스 신학자인 알프레드 루아지(Alfred Loisy)는 그런 아이러니를 유명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예수가 선포한 것은 하나님 나라였는데 막상 실현된 건 교회였다.” 카이사르에 맞선 예수의 정치적 도전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나님 나라의 약속과 가능성은 무엇일까? 또 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외르크 리거 지음/정준화 옮김, <예수 대 카이사르 : 문명 붕괴 시대에 예수 새로 찾기>(한국기독교연구소, 2025. 03. 05.), 91-92.

 

====================================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는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적 예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그가, 반항한 노예나 로마 제국을 전복하려는 반란 세력에게 해당하는 형벌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수가 꿈꾸었던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마음의 평안이나, 가정의 평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예수 운동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당시 지배 권력인 카이사르에게 매우 불편하고 뭔가 위협이 될 만한 것이었다.

하나냐(Hananiah)의 아들처럼 단순히 과격한 설교를 한 이들은 두들겨 맞거나 호된 질책을 당했을 뿐이었지만,

예수는 분명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한국의 많은 교회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그저 대속 교리의 증거로만 사용하고,

구원의 수단으로만 이해한다.

바로 여기에 한국교회의 천박함과 무력함이 놓여 있다.

 

예수가 악마의 유혹에 맞서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했던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날 어떤 대안적 체제와 삶의 방식을 만들어낼 것인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예수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과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고,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급적 위계질서를 지닌 권력 체제 자체를 부정하시며, 이긴 자가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사고를 거부하셨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긴다는 것,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대안적 사회체제를 만들기 위해 도전한다는 것이다.

 

 

 

 

- 향린 목회 20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