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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살아 남은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by phobbi posted May 18, 2025 Views 28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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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5-18

2025. 05. 18.

 

터미널 대합실에, 기차역 앞에 그런 참혹한 시신들이 누워 있었을 때, 군인들이 행인들을 때리고 찌르며 반벌거벗겨 트럭에 실어 갔을 때, 집에 있던 젊은이들까지 수색해 끌고 갔을 때, 도시 외곽이 봉쇄되고 전화는 불통이었을 때, 맨몸으로 항의하는 군중들을 향해 실탄이 발포되었을 때, 이십여분 만에 백여구의 시신이 도로에 널브러졌을 때, 모두 몰살될 거라는 소문이 불붙은 듯 퍼져나갔을 때, 예비군 훈련장에서 구식 총기를 꺼내온 평범한 남자들이 동네 초등학교에, 하천 다리에 삼삼오오 모여 보초를 섰을 때, 썰물처럼 빠져나간 공권력을 대신해 도청에서 시민 자치가 시작됐을 때,

 

그때 나는 수유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집에 돌아오면 대문 안쪽에 떨어져 있는 석간 ㄷ일보를 집어들고, 좁고 긴 마당을 따라 걸으며 머리기사를 읽었다. 광주 무정부 상태 5일째. 사진 속에 검게 그을린 건물들. 이마에 흰 띠를 두른 남자들로 가득한 트럭. 집안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침통했다. 안돼, 오늘도 전화가 안돼, 대인시장통의 외가에 엄마는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다.

 

희영이 고모가 무사했던 것처럼 나는 무사했다. 일가친척 중 누구도 다치거나 죽거나 끌려가지 않았다. 다만 그해 가을 나는 생각했다. 차가운 장판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숙제를 하던 방, 그 부엌머리 방을 그 중학생이 쓰지 않았을까. 내가 건너온 무더운 여름을 정말 그는 건너오지 못했나.

 

한강 지음, <소년이 온다>(창비 2014. 5. 19.),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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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비극으로 물들어 있다.

끔찍한 폭력 한 가운데 있던 모든 이들은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위의 책 134.)

 

이들은 날마다 생사의 기로에서 몸부림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 줄 수 있습니까?”(위의 책 135.)

 

무더운 여름을 건너온 자들이, 무사했던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 지옥으로 내려갔고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육도 중생을 위해 성불을 무한히 연기하였다는데,

살아남은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 향린 목회 19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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