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람을 살리나

by phobbi posted Oct 09, 2026 View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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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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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09.

 

처음 의식이 혼미상태에 빠질 때 나는 내 몸이 어떤 늪으로 사정없이 빠져드는 것을 보았다. 목, 입, 마침내 온몸이 가라앉은 순간 그 늪이 동그란 파문을 일으키며 마지막 신호인 듯 물방울이 볼록볼록하는 것까지 보았다. 나는 지금 그렇게 빠져들어가는 나와 분리되어 또 하나의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다음 얘기는 그와 연계된다. 나는 57년 전의 소년으로 되돌아갔다. 깊은 눈구덩이 속으로 빠져 있는 것이다. 기어나오려면 점점 몸은 아래로 가라앉았다. 기진맥진해서 삶의 의욕을 포기해 버렸더니 그렇게 마음과 몸이 편할 수 없었다. 그대로 있으면 이른바 동사(凍死)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느 때 와도 똑같이 하얀 의복을 입은 어머니가 노인이 다 돼버린 나 더러 “××야 ××야, 빨리 나오너라. 빨리 내 손을 잡아라.” 그러나 그 손이 미치지를 않았다. 그 손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다 쓰니 얼마 동안을 흘렸는지 모르나 나는 그 눈 속에서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때와 비교해서 하나 특이했던 것은 역시 그것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눈구덩이에 깊이 빠져 미동도 하지 않는데 거기에 함박 같은 눈 이 계속 쏟아져서 점점 외계와 멀어져 갔다. 그것으로 사실상 끝을 맺었다.

 

그런 순간 어머니가 나타나 “××야, ××야. 내 손을 잡아라” 하고 애를 태우는 소리와 애절한 모습을 보았다. 선천댁이 또 한 번 나를 살린 것이다. 그때는 비록 손은 닿지 않으나 세상에 있었고 지금은 세상을 뜬 지도 수십 년이 되어 땅속에 묻혀 해골이 되고 말았는데. 다른 사람의 피는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자기 피로만 소생시킨다는 것을 고수하는 이 수술팀은 더 소생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기적과도 같이 솟아난 것이다.

 

그래 나를 살린 것은 종교인도 아니요, 먹물에 찌든 지식인 도 아니요, 하늘과 도통하는 도인도 아니요, 일개 평범한 너무도 평범한 한 여인이다.

 

그는 가슴속에 순수하게 지녔던 애정을 쏟아 피가 모자라는 내게 공급했던 것이다. 내가 찾은 것은 어릴 때도 아버지가 아니고 엄마였는데 칠십을 바라보는 노구로도 엄마 외에는 누구도 찾지 않았다. 기억에서는 멀리멀리 사라졌어야 할 그 엄마 - 그가 현재하여 나를 살렸던 것이다. 나는 지금 신비주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환상이었고 그 환상은 내 뼛속에 간직했던 선천댁에 대한 나의 신뢰와 그리움이 환상으로 된 것이다.

 

왜 그때 나는 아버지를 찾지 않았을까. 왜 사경을 헤매는 내게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는 공자 맹자에 미친 이였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유학 공부의 강요를 받았어야만 했다. 그래서 비교적 오랫동안 공자나 맹자는 한국 사람인 줄 알았다.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자못 크다. 온통 벽에도 그 들의 글이요, 그들을 흠모하는 글들을 보면서 자라 왔다. 그러나 그렇게 배우던 삶의 지혜가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한 장의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아니다! 너를 살린 이는 공·맹이 아니다. 그들에게 도취해서 흥겨워하는 먹물도 아니다. 나를 살리고 지금까지 사로잡고 있는 이는 글자로써 어떤 지혜도 배우지 않고 사람의 삶을 지혜롭게 풀 줄도 모르는 여자 - 오직 속에 깊이 간직한 사랑, 그것이 환상이 되고 목소리가 되고 피가 되어 나를 구해 냈다.

 

안병무 지음, <선천댁>(범우사, 1996년 10월 30일 초판 2쇄 발행), 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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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선생님은 자신이 겪은 일이 신비주의가 아니라

“내 뼛속에 간직했던 선천댁에 대한 나의 신뢰와 그리움이 환상”으로 된 것이라 말하지만,

내용으로만 보면 전형적인 임사체험이다.

그러나 그는 신학자였기에, 그것도 불트만을 이미 넘어선 분이었기에

신비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대신 사랑과 생명의 어머니의 현존으로 자신의 체험을 해석해 낸다.

 

그리고 묻는다.

 

“왜 아버지를 찾지 않았나?”

“왜 공자 맹자가 아닌가?”

 

오늘 우리도 물을 수 있다.

 

누가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는가?

종교인인가? 지식인인가? 도인인가?

우리 곁의 선천댁은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의 뼛속에 신뢰와 그리움으로 남을 것인가?

 

- 향린 목회 70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