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 연료 체제의 극복

by phobbi posted Oct 02, 2026 Views 4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6-10-0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6. 10. 02.

 

이 위기를 몰고 오는 화석연료 경제는 단순히 ‘결함 있는 체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 교리가 ‘죄의 구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착취와 이윤. 그리고 인간이 처한 현실에 대한 냉혹한 무관심의 논리 위에 세워진 기계입니다. 화석연료 체제는 사람과 지구를 희생시켜 온 우상숭배입니다. 부당한 권력 체계와 지배적인 경제질서에 뿌리를 둔 화석연료 체제는 이윤의 제단 위에서 이 지구의 모든 생명의 미래를 희생시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디에서든 일어나는 불의는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 한다.” 18세기에 노예를 이용하는 일은 경제적 안정과 성장에 필수적이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일단의 퀘이커교도들이 노예제의 불의에 맞서 싸우고자 일어섰을 때, 정치인들과 산업가들은 노예제 폐지가 경제를 무너뜨릴 것이라며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60년 뒤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그 나라들의 경제는 붕괴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그들이 예속된 나라들의 정부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던 신식민지에서는 경제가 흔들리거나 무너졌습니다. 모든 나라에서 노예제가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오늘날에도 그와 유사한 구조적 관행이 많이 존재하며, 그중 일부는 우리 사회의 주류적 관행이기까지 합니다.

 

오늘날에도 현대의 노예제가 존재하며, 그 주인은 화석연료 산업입니다. 오늘날 화석연료는 독점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소수 지배층이 선호하는 상품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 제국의 노예입니다. 화석연료에 대한 우리의 의존은 이러한 노예제에서 비롯됩니다. 안타깝게도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지구 기후의 교란이라는 더 큰 위협에 휘둘리고 있습니다. 노예제 폐지가 18세기의 정치인과 사업가들이 근거 없이 경솔하게 단언했던 것처럼 경제발전 을 해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화석연료 시대의 종결도 지금 진보를 향한 길을 찾아가려는 나라들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지속되는 발전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후위기와 화석연료 산업이 모두 매우 부당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더 이상 경제성이나 기술적 실현 가능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화석연료와 재생 에너지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도덕적으로 중대한 결과를 낳는 문제입니다. 오염을 일으키는 에너지를 버리고 기후변화에 맞서는 것은 경제발전에 제동을 건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덜 다녔지만 우리를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미래로 이끄는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 일입니다.

 

나데레브 (옙) 마들라 사뇨(찬미받으소서 운동 이사회 의장), “미래와 맺는 우리의 언약: 신앙, 연대, 그리고 화석연료를 넘어서는 여정”, 기후정의 국제컨퍼런스 「ANOTHER WORLD IS POSSIBLE : 화석연료 없는 미래를 향한 정의로운 전환」 자료집(2026. 10. 1.) 14-15.

 

=============================

 

기후정의 국제컨퍼런스에 다녀왔다.

기조 강연자의 말대로 화석연료 체제는 지금 당장 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이다.

 

AI의 멈춤 없는 가속은 엄청난 양의 전기를 필요로 하고,

기후위기 또한 가속화시킨다.

 

AI는 오늘날의 선악과가 될 것인가?

내게도 AI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AI 선두 기업들이 스스로 속도조절론을 내놓고 있지만,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기업의 경쟁구조는 속도 조절을 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버전이 등장한다.

더 무서운 것은 이미 인공지능의 “재귀적 자기개선”의 상황으로 들어간 징후가 보이고,

앞으로 또 어떤 것이 등장할지 모르겠다.

 

나 자신도 어디까지 인공지능을 써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아예 쓰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

우리 교회에서 내년 목회의 한 중요한 과제로,

AI 시대에 대한 신앙적 성찰과 실천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정의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몰고 올 사회변화에 대해 다각도로 살필 필요가 있다.

 

지구적 차원의 집단 지성의 힘과 연대가 필요하다.

 

- 향린 목회 698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