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9. 17.
정신과 의사로서 대단한 면담이나 치료랄 것은 없었으나 한 가지 자부심이 있다면, 경험이 일천할 때(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종종 저질렀던 실수인, 어쭙잖은 심리적 범주와 개념으로 타인을 낙인찍는 일을 더 이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건 과거의 트라우마가 참 깊고 경계선 인격장애에 가까우니(그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예시다) 안타깝지만 치유가 잘되진 않겠다’ 따위의 생각을 속에 품고서 겉으로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절망만이 가득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어야 할지 막막한 그 시간 가운데서도, 아직은 찾지 못했지만 그가 그만의 의미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예측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비록 무엇이 소중한지는 깊은 마음의 상처로 가려져 있으나, 다가올 시간에 그가 소중히 여기는 순간들이 존재할 것임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당신이 아무리 죽고 싶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살게 하는 무언가를 위한 시간을 쌓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꽤 긴 시간, 계절이 네댓 번 바뀌는 동안에도 놓은 적이 없다.
이두형 지음,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갈매나무, 2026. 7. 7. 초판 3쇄 발행), 1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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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종교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믿음을 갖고 살고,
올바른 믿음이 사람을 살린다.
그래서 무슨 내용의 믿음을 지닐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현대인에게 올바른 믿음을 심어 주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이 신뢰를 획득하고 있는가?
나 자신은 인생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우리 사회와 다른 이들에 대해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 향린 목회 68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