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츠기 인생

by phobbi posted Sep 15, 2026 Views 5 Replies 0
Extra Form
날짜 2026-09-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6. 09. 15. 

 

삶이란 불행하기는 너무도 쉬운 반면 행복하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불행의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정신과 의사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차근차근 행복을 쌓아 올리기 위한 조건은 여러모로 까다로운 데 반해, 우리를 불행하게 할 만한 요소들은 마치 지뢰밭의 지뢰처럼 삶 곳곳에 숨어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꽤 괜찮은 삶’을 사는 것은 만만치 않다. 사랑을 아는 부모를 만나, 따돌림당하는 아픔 없이 성실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며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사회인으로 거듭나, 평균 이상의 임금을 받으며 노후를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세간의 인식에 따르면 그 정도는 되어야 겨우 ‘나쁘지 않은’ 삶이 완성된다. 

 

반대로 살아가며 믿고 있던 가치체계가 완전히 깨어지는 경험, 인생의 근원적인 토대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기는 너무도 쉽다. 부모의 학대, 육체적·성적 폭력, 불의의 사고 또는 질병과 그로 인한 신체장애, 전세 사기, 투자 실패, 직장 내 괴롭힘, 가정불화, 노후 준비의 어려움, 자식과의 관계 단절… 누구에게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어느 하나도 가벼운 것 없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한 상황을 목도하고 인내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어려움 이상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스스로와 삶에 대한 인식의 붕괴다. 그동안 믿고 있던 인생의 공식이 완전히 어긋나, 마치 나 자신과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리는 듯한 느낌이다. 패닉이자 아노미다. 비유하자면, 삶이 깨진 도자기처럼 산산조각나 어떻게 해도 원래대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혹은 스스로가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깨진 그릇이어서 온전한 적이 없었다는 막막함이기도 하다. 아무리 고뇌하더라도 그 깨진 조각들을 맞추어 안온한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절망에 압도된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그러한 순간과 감정을 마주할 때마다 떠오르는, 수용전념치료에서 삶을 표현하는 비유가 있다. 깨진 잔을 옻으로 결합한 뒤 금으로 장식하는 공예, 킨츠기 예술 이야기다. 

 

‘킨(金)’은 일본어로 ‘금’, ‘츠기(継ぎ)’는 ‘잇다’라는 뜻이다(외래어표기법에 따른 정확한 표기는 ‘긴쓰기’지만 흔히 ‘킨츠기’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한 장군이 진귀한 찻잔을 선물받았다. 평소 예술에 조예가 깊던 그는 이를 매우 아꼈으나 실수로 깨뜨려버리고 말았다. 그는 당대에 기술력으로는 제일이었던 중국에 보내 잔을 수리하게 했다. 그러나 중국의 장인들은 단지 조각을 균열대로 이어붙이고 금속으로 고정했을 뿐이었다. 실망한 그는 이번에는 깨진 도기를 전문으로 수선하는 일본의 장인에게 맡겼다. 그 장인은 단순히 ‘원래대로 복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대신, 균열도 온전히 포용할 수 있는 금실의 흐름으로 잔을 이었다. 이윽고 탄생한 잔은 단순히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품은 채로 다시 태어났다. 

 

이두형 지음, <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갈매나무, 2026. 7. 7. 초판 3쇄 발행), 87-89. 

 

=======================================

 

삶은 늘 깨지기 마련이다. 

마음은 상처를 입고, 

쌓았던 세상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깨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상처받아 굳어진 마음을 다시 상처받을 수 있는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다독이고, 

무너진 세상에서도 다시 시작하는 것.

 

킨츠기 인생!

 

- 향린 목회 681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