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말과 땅위의 말

by phobbi posted Aug 31, 2026 Views 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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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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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31.

 

노예 출신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비싼 등잔 하나를 도둑맞습니다. 이를 들은 제자가 분개하여 말합니다. “그렇게 값비싼 것을 잃고도 아무렇지 않으십니까?” 에픽테토스는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그건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내 곁에 있던 것이었네.” 담화록118.

 

소유의 관념은 매우 사회적입니다. 내 것, 네 것은 공동체의 규범과 관습에 따라 달라집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사다리를 높이 올라 우주적 관점에서 소유를 바라봅니다. 도대체 내 것이라고 할 게 무엇이 있습니까? 오로지 내 마음만이 나의 것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님을, 잠시 나에게 왔다가 다시 가는 우주적 변화의 한 부분임을 스토아 철학자는 봅니다. 그가 깨달은 하늘의 말은 단지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라, 땅 위의 맥락과 질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알려줍니다. 맥락에 충실하다는 것이 무엇임을, 특정한 입장과 관점을 고집하는 게 아님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물건을 잃어도 담담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말과 땅 위의 말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 땅 위의 생명을 기르듯이 하늘의 말은 구체적 맥락에 놓인 우리의 삶과 말을 보다 풍요롭고 정교하게 해석할 수 있는 성숙함을 길러줍니다. 우리가 사다리를 부지런히 오르내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노파심에 덧붙입니다. 에픽테토스의 말을 도둑이 응용하면 어쩌지요? “그래! 잠시 네 곁에 있던 것을 내 곁으로 옮긴 것이야. 본래 네것 내것이 어디 있겠어.” 도둑은 에픽테토스가 제자에게 한 말의 맥락을 충실하게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은 잃어버린 자에게, 그래서 분노하는 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말의 맥락에 충실하려면 화자와 청자의 관점을 - 공자가 자로와 염유를 대하듯 -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도둑이 들어야 할 에픽테토스의 말은 따로 있습니다. “그는 물건을 얻은 대신 더 비싼 대가(영혼의 덕)를 치른 것이다.” 담화록, 129장 도둑은 물건을 가진 대신 영혼의 소중한 부분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의 덕을 잃은 겁니다. 하늘의 말은 지상(공동체)의 질서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편상범, “하늘의 말, 땅위의 말”, <: 사람과 사람 사이>(사단법인 마인드랩, 2026. 06. 20.), 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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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전공자인 필자는 추상어를 하늘의 말로, 구체어를 땅 위의 말로 비유하면서

우리들의 언어가 하늘과 땅의 사다리를 부지런히 오르내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늘의 언어인 추상어는 땅의 구체적인 맥락들을 사상(捨象)하면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버리지 못하면 얻지도 못한다.

버려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

하늘에 오르면 온 세계가 한눈에 들어오듯,

보편성과 합리성을 획득한 언어는 세계를 전관하는 힘을 준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더 나은 길을 가도록 방향을 잡게 해준다.

수학과 과학의 언어가 대표적 추상어이다.

 

동시에 추상어가 지닌 보편성과 합리성은 다시 구체적 맥락 안에서 적용되어야 한다.

이때는 보편성과 공통성만큼이나 중요한 특수성과 고유성을 살펴야 한다.

맥락을 잃으면, 보편어는 폭력과 억압, 또는 억지와 어리석음으로 변질되고 만다.

 

오늘 사다리를 타고 부지런히 오르내리자.

 

- 향린 목회 66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