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8. 28.
정신은 신비로부터 나타나서 신비로부터 말을 걸어오는 ‘너’에 대한 응답이다. 정신이란 말이다. 그리고 입으로 하는 말은 먼저 사람의 머리 속에서 말을 하고, 그 다음에 목구멍에서 소리를 내게 되지만,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 참된 사건의 굴절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은 말하자면 말이 사람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말 가운데 서 있으며 그 말로부터 말을 하는 것이다. - 모든 말이 그러하며 모든 정신이 그러하다. 정신은 ‘나’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며 ‘나’와 ‘너’ 사이에 있는 것이다. 정신은 그대의 몸 속을 돌고 있는 피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대가 그 속에서 숨쉬고 있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사람은 ‘너’에게 응답할 수 있을 때, 정신 안에서 살고 있다. 사람은 그의 존재 전체를 기울여 관계에 들어설 때 ‘너’에게 응답할 수 있다. 사람은 그의 관계 능력에 의하여서만 정신 안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마르틴 부버 지음/표재명 옮김, <나와 너>(문예출판사, 2001. 9. 20. 제2판 5쇄 펴낸날),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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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신비로부터 나타나서 신비로부터 말을 걸어오는 ‘너’에 대한 응답이다.”
우리는 흔히 내 안에 사유가 있고, 그것을 말로 꺼낸다고 생각한다.
말은 사유의 도구이고, 사유나 말의 주인은 나라고.
부버는 이 생각을 뒤집는다.
사람이 말 가운데 서 있고, 다가오는 말로부터 말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사이의 철학”(Philosophie des Zwischen)을 말하는 부버는
나는 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너”라는 근원어(根源語, Grundworte) 속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주체 이전에 관계가 먼저 있다는 것이다.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사유하는 능력으로서의 정신은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너’ 사이에 있다.
정신은 피처럼 내 몸속을 도는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내가 그 속에서 숨 쉬는 것이다.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머물 수 있을 뿐이다.
정신이 본질적으로 이렇다면,
우리가 훈련해야 하는 것은 바로 ‘너’에게 응답하는 능력이다.
‘그것’으로서의 ‘너’가 아니라 이미 ‘나-너’로 존재하는 ‘너’에게 응답하는 그 능력.
존재 전체를 기울여 관계에 들어설 수 있는 능력.
- 향린 목회 663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