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8. 25.
언어란, 원래 어딘가에 편재하거나 머릿속에서 그리는 컨셉의 언표와는 다른, 제3의 무엇이 아닐까. 엄밀한 의미에서 언어란 순수하게 인간의 일방통행적인 제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 누가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을 사용하는 자가 컨트롤함으로써 탈구축하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들의 문맥은 여전히 자기 이념의 실현으로써 언어의 표출을 원하는 획책처럼 느껴진다.
니시타 기타로의 말투를 빌리자면, 하나의 말은 세계의 하나의 사건이다. 인간과 온갖 가시·불가시한 사물과 장과의 대응 관계 속에서 때로는 호응이라는 형태로, 때로는 반발이라는 형태로, 그곳에 하나의 터트려짐(事件)으로서 태어나는 것-. 편재하는 정보의 파편을 인용하거나 바꿔짠다고 하기보다는 그것들이 내가 있는 세계의 어떤 터트려짐으로서 생명을 지니는 그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살아 있는 언어일 터이다. 세계의 상호 울림의 양상에 따라 언어의 존재성이나 그 성질은 결정된다. 따라서 인간이 갈고 닦아져서 힘이 늘수록 대응하는 사물의 존재성도 커지며 거기에서 표출되는 언어 또한 풍요로워지는 것이리라. 문어나 구어나, 그 출처에 있어서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터트려짐의 장면성이 좀더 완만한 것이 일상의 구어일 것이고 대응관계의 긴장도나 순도가 높은 상호 울림이, 예컨대 시라는 형태의 언어를 탄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우환 지음/김춘미 옮김, <여백의 예술>(현대문학, 2008. 1. 25. 초판 3쇄 펴낸날),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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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존재의 사건이어야 한다.
특히 설교의 언어는 존재의 생명이 터져 나오는 사건이어야 한다.
- 향린 목회 66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