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로서의 타자

by phobbi posted Aug 21, 2026 Views 4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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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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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21.

 

레비나스에 따르면 한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에 의해 깨어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수수께끼 혹은 비밀로서의 타자에 대한 경험을 잃어버렸다. 타자는 이제 유용성의 목적론에, 경제적 계산과 가치평가의 목적론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 타자는 투명해진다. 타자는 경제적 객체로 강등된다. 이에 반해 수수께끼로서의 타자는 전혀 가치평가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다름을 전제로 한다. 타자의 다름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다름도 사랑의 전제다. 사람의 이원성은 자신에 대한 사랑에 필수적이다. “다른 한 사람이 우리와 다른, 우리와 대립되는 방식으로 살고 활동하고 느낀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기뻐하는 것 말고 무엇이 사랑이겠는가? 대립하는 것들을 기쁨으로 연결하려면 사랑은 이 대립하는 것들을 제거해서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심지어 자기애도 한 사람 속에 있는, 서로 뒤섞을 수 없는 이원성(혹은 다원성)을 전제로 한다."

 

한병철/이재영 옮김, <타자의 추방>(문학과 지성사, 2017. 2. 27.),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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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타자성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를 대상으로 보면서 주체 안으로 구겨 넣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낯선 그대로, 신비함을 간직하고, 수수께끼인 채로 만나야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열린 귀를 가지고 청취하는 인간으로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말할 때도 응해서 말하기의 연습을 해야 한다.

 

자기 긍정과 좋아요의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타자를 환영하고 타자의 다름을 긍정하고 그런 후에

그를 경청하는 것, 그가 말하도록 돕는 훈련이 요청되는 것이다.

 

- 향린 목회 65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