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8. 12.
서구 문학에서 가장 초창기 상처 입은 치유자 중 한 명은 오디세우스로, 그의 이름은 “고통을 지닌 자”라는 뜻이다. 그는 조상들이 겪은 그리고 조상들이 남긴 상처 모두를 지니고 있다. 호머의 이야기 초반에서 오디세우스는 이타카(Ithaca)에서의 자신의 출생과 성장에 얽힌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영웅적인 번영을 향하여 항해를 떠난다. 그러나 불사의 전사가 되려는 그의 시도는 자신의 유한성을 상기시키는 사건들에 의해 끊임없이 좌절된다. 트로이에서의 잔혹한 학살, 칼립소의 유혹을 뿌리친 사건(신의 음식인 암브로시아 대신 인간의 음식을 택한 장면)이 이러한 깨달음의 중심에 있다. 오디세우스는 비현실적인 환영을 품는 대신 땅을 만지고 맛보기를 더 좋아한다. 비천한 거지의 모습으로 이타카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오직 그의 개 아르고스(Argos)가 오디세우스의 살냄새를 맡고, 유모 에우리클레이아(Eurycleia)가 그의 상처를 터치할 때 비로소 그의 정체가 인식된다. 이 터치는 유모 에우리클레이아가 오디세우스의 몸을 씻기는 동안 그 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 아우톨리코스(Autolycus와) 함께 사냥하다 부상당했던 사건을 떠올리자 일어난 것이다(오디세이』 19.393-469). 이 “인식”이라는 절정의 순간은 이중적 카타르시스 형태로 나타난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흉터를 만져보는 것은 그가 잊고 있던 상처를 받아들이는 수단이 되어 준다. 회복된 기억과 함께 전달된 에우리클레이아의 손길은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서서히 다시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터치와 이야기가 결합 되어 나타난 치유 효과를 통해 결국 스스로를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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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Telemachus)는 승리한 영웅으로 이타카에 돌아올 아버지를 기대했기에 처음에는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위대한 영웅 아버지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어, 거지의 모습 뒤에 있는 진짜 아버지를 보지 못한다. 텔레마코스는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 진흙 움막에 앉아 속세의 음식을 함께 나누던 때에야 비로소 그의 눈에 덮인 환상을 벗어내고 마침내 진실을 접하게 된다.
리차드 카니 지음/김연민·김은혜 옮김, <터치, 생명의 감각을 회복하다>(한국문화사, 2025. 2. 21. 1판 1쇄 발행), 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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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는 몸을 통해서,
특별히 상처 입은 몸을 통해서 일어난다.
어머니의 탯줄에서 잘려 나가는 탄생은 첫 번째 트라우마이자,
일종의 죽음 체험이다.
이렇게 죽음과 죽음 사이에 삶이 존재하는데,
분열과 회복의 연속 속에서
상처 입은 자의 삶을 치유하는 것은
몸의 촉감을 살려내는 사랑 가득한 터치에서 가능하다.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려고 했던 여인과,
그 마음을 느끼고 자신을 내어준 예수가 병자들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그들을 만진 것 또한 모두 이런 연유에서인 것이다.
- 향린 목회 647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