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산다

by phobbi posted Aug 01, 2026 View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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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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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8. 01.

 

이현주: 저 역시 이 땅에 사는 사람이고, 갈등 속에 살았죠. 누가 저를 미워할 수도 있고 저도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어요. 다만 세류(世流), 세상 흐름이라는 것을 고전적으로 성서에선 사탄이라고 해요. 예수 말로는 공중 권세 잡은 자들’, 눈에 안 보이지만 그런 게 있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의 목표는 하늘의 명을 거역하라는 거예요. ‘하늘의 명을 따르지 마라첫 사람 아담이 그리 간 거죠. 그러면 그때부터 결국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거죠. 소위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거죠. 이 시대에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는 거지 사실은 저 창세기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있어온 거죠. 거기에 예수라는 인간이 나타나서 그렇게 안 살아도 돼라고 얘기한 거예요. ‘하늘의 명령에 복종할 수도 있어. 꼭 거역해야만 하는 건 아니야. 너 스스로 네 생각을 포기할 수도 있어. 꼭 네 생각을 주장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기꺼이 네 주장을 포기할 자유도 있어.’ 이런 이야기를 했단 말이죠. 그래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한다면 내가 죽을게’, 그걸 말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했어요. 그러다보니 둘 다 살았어요.

 

우리나라 민담에도 그런 얘기 많아요. 나이든 아버지, 두 내외, 손주 이렇게 삼대가 사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병들고 약이 없어 속절없이 죽어가요. 두 내외가 수심이 가득한데 지나가던 도사가 아홉 살 먹은 사내아이를 밤새도록 고아서 그 국물을 드리면 낫는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자기들 자식이야, 결국 두 내외가 저녁에 돌아온 아들 녀석 옷을 벗겨 밤새 고았다는 거 아니에요. 그 물을 아버지한테 드리니 아버지가 언제 아팠나 싶게 나았다는 거예요. 하지만 두 내외가 기뻐할 수만은 없죠. 자식을 잃었으니까. 그런데 아침에 삽짝을 열고 자식이 들어왔어요. 어찌된 일인가 하는데 아이 말이 어제 훈장 선생님이 너 오늘 집에 가면 죽으니까 여기서 자고 가라고 했다는 거예요.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하는데 도사가 나타나서 말해줘요. ‘당신들이 어제 아버지냐 자식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여기서 자식을 죽이라는 게 하늘의 명이었다. 당신들이 그 명을 따르는 것을 보고 산신령이 하도 기특해서 동자삼을 보냈다.’는 거예요. 동자삼은 어린아이처럼 생긴 산삼이죠. 그래서 결국 잘 살다 죽었다는 민담이 있어요.

 

김진호: 성서 설화보다 낫네요. ㅎㅎㅎ

 

이현주: 아버지냐 자식이냐, 이건 아브라함 이야기에도 나오잖아요. 아브라함은 자식을 못 죽였는데, 우린 밤새도록 고아요. 이 민족이 그런 민족이야. ㅎㅎㅎ 아버지는 나를 낳으신 분이고, 자식은 내가 낳은 거죠. 내가 낳은 것보다 나를 낳은 쪽이 우선이고, 그래서 내가 낳은 것을 죽이면 나를 낳은 것이 산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예수를 죽였고, 그래서 산 것인데, 말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했어요. 그렇게 보면 나는 자식이잖아요. 그래서 예수가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면 산다는 묘한 말을 한 것 아닌가 싶어요. ‘죽으려고 하면산다가 아니라, ‘죽으면산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살아남지?’라는 생각으로 지배당하고 있어요.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저분의 뜻대로 죽어갈까? 어떻게 하면 내가 죽고 저 사람은 살릴까?’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 생각을 못하는 건 아니죠. 누구든 할 수 있어요. 예수가 그런 얘기를 하러 우리에게 왔고, 지금도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현실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라, 현실을 통해서 들려오는 하늘의 음성을 들어보자. 다 같이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 생겨났으면 하는 거죠.

 

이현주와 김진호의 대화, <길 없는 길 위에서>(삼인, 2021. 12. 15.), 10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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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어떻게 하면 살아남지?’가 아니라

어떻게 저분의 뜻대로 죽어갈까?’를 생각하며

죽는다.

 

- 향린 목회 636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