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31.
키스 자매가 당초 한국에 여행 올 때 특별한 목표를 설정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그때까지 가보지 못했던 은둔의 나라를 찾는다는 정도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일본 영토의 일부로 되어 있긴 했지만 본래 다른 전통을 가진, 다른 민족의 나라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들이 한국 땅에 발을 디딘 그 시점은 3·1운동이 한창이던 때였다. 키스 자매는 3·1운동의 양상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급속하게 한국에 친화적인 입장을 갖게 되었다. 3·1운동과 한국인의 행동에 대한 그의 관찰기를 보자.
“그날 아침 내내 서울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전혀 소식을 모르면서도 왠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떠 있었다. 고종의 서거로 인한 국상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내 사람들이 파고다 공원에 집합했다. 여기에 신호만 받으면 일제히 한목소리로 ‘만세, 만세,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한 것이다. 군중이 이리저리 몰리면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내 종이 울리고 한 젊은이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서 들렸다.
한국인의 자질 중에 가장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일본 경찰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 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죄수들은 흑갈색의 옷에다 조개 모양의 삐죽한 짚으로 된 모자를 쓰고 짚신을 신은 채, 줄줄이 엮여 끌려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6척 또는 그 이상 되는 장신이었는데, 그 앞에 가는 일본 사람은 총칼을 차고 보기 흉한 독일식 모자에 번쩍이는 제복을 입은 데다가 덩치도 왜소했다. 그들의 키는 한국 죄수들의 어깨에도 못 닿을 정도로 작았다.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들은 초라해 보였다.”
김창희 지음, <가도 가도 왕십리>(도서출판 푸른역사, 2025. 9. 29. 초판 1쇄 발행), 1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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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한국에 온 영국의 키스 자매가
3.1운동에 참여한 한국인들을 보며 느낀 솔직한 인상이다.
‘의젓한 몸가짐’, ‘당당한 모습’이라는 말들이 내 눈에 확 들어온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때도 우리들이 이런 모습을 잃지 않았다는 것인데,
잘 사는 나라가 된 오늘날 얼마나 우리에게서
의젓하고 당당한 모습을 만나게 되는가?
외국에서 오래도록 공부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후배가
1-2년에 한 번씩 한국에 들를 때마다 전하는 요즘 한국인들의 인상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예전보다 더 각박해진 느낌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에 대한 키스 자매의 인상이나 후배의 인상이
각자의 개인적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이들의 말들을 들으며 “도대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 향린 목회 635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