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7. 30.
기독교는 말과 언어를 매우 중시한다. 말에 희망을 둠으로써 힘 숭배를 벗어난 종교가 기독교이다. 그것은 구원의 진리인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보는 기독론에서 잘 드러난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태초는 시간 너머의 영원과 시간의 경계로서, 세상과 사람을 구원할 진리의 초월적 위치를 시간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자어 ‘태초’는 도가와 유교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역시 진리의 초월적 지위를 표현하는 말이다. ‘태초에 말이 있었고 그 말이 곧 하나님이다.’는 성서의 선언은 말을 초월적 진리인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으로 봄으로써, 말과 언어에 구원론적 관점을 부여했다. 말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기 이전에 구원의 진리인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말로 나오게 되어 있고, 사람의 말로 나올 수 없는 진리는 없다.
이것은 말로는 진리와 도를 표현할 수 없다고 본 도가의 언어관과 다르다. 태초(太初)를 태허(太虛)로 이해하는 도가에서 말은 도의 본질과 거리가 멀고, 진리를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도가와 달리 유교에서는 진리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보지만, 그러나 말이 진리에 속한 것은 아니다. 순자의 언어철학에서 본대로 언어의 기초단위인 이름 붙이기(命名)는 사회적 약속이거나 성인(聖人)과 왕의 작품이다. 진리인 태극이나 이(理)는 언어를 본질로 삼지 않는다. 유교에서 말을 아끼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기독교와 유교의 언어관의 차이는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이 인격적 존재라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격화된 신들을 가까이 두고 믿던 자연종교에서도 신의 언어성은 부인된다. 종교학자들이 밝힌 대로 원시 종교의 수많은 자연신을 대표하는 언어는 힘(mana)이지 말이 아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말과 연관시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특징이다.
물론 하나님이 말씀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말로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의 본질을 알 수 없다고 보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말로 다 표현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점에서 기독교는 언어의 한계를 잊지 않는다. 사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은 도 가의 도(道) 또는 유교의 태극이나 이(理)보다 훨씬 초월적 존재이다. 절대 초월성은 언어 바깥의 영역이며, 따라서 기독교의 하나님을 말씀으로 보는 요한복음의 구절은 매우 모순적으로 보인다. 1912년에 출간된 구역(舊譯) 성서에서 요한복음 1:1을 “태초에 도(道)가 계시느라”로 번역한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도’로 번역된 그리스어 ‘로고스’(logos)라는 개념에는 진리 또는 도(ratio)라는 뜻과 말(oratio)이라는 뜻이 모두 들어 있다. 히브리 사유에 따르면 로고스를 ‘말’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절대 초월자 하나님을 ‘말’과 일치시키는 것은 번역자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익숙했던 유교의 개념을 가지고 와서 “태초에 도가 계시니라”라고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랬다가 1938년에 나온 개역 성서에서 본래 의미를 찾아 ‘도’를 ‘말씀’으로 바꾸었다.
양명수, 「유교와 기독교의 언어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기독교사상 2026. 08. 통권 812호』(대한기독교서회, 2026. 08. 01.), 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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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요한복음서 1장 1절의 명제는 매우 많은 것을 떠오르게 한다.
우선 이 명제가 탄생한 이유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예수의 존재는 충격이었고,
예수의 지위를 설명하려는 노력 때문이다.
태초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사용되었던 그 말!
피조물의 관점에서 창조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사용하신 말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말은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곧 하나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말이 중시되면서 양 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기독교는 힘 숭배의 종교에서 벗어난다.
폭력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
그것도 발화되는 상호 간의 말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고 이끌어가려는 종교가 된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넘어선다.
하나님에게는 침묵도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끊임없이 인간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담아내려고 했다(성경).
동시에 태초에 말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언어였다.
그러기에 말은 본래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말도 하나님의 말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말은 하나님을 닮아야하고,
또 하나님을 닮아 침묵의 언어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 향린 목회 634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