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에 대하여

by phobbi posted Jul 26, 2026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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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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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7. 26. 

 

20대 초반의 학생들, 특히 그리스도교에 대한 지식과 신앙이 없는 학생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은 마치 외국어를 번역하는 일과 같다. 수십 년 차이도 아득한데 멀게는 수천 년 전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신화적 상상력과 삶의 경험이 응축된 신학을, 21세기 과학 기술 문명과 정보화 사회의 생활 방식과 경험에 닿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신학이 담보하고 있는 실존적 경험의 깊이다. 얼핏 건조하고 엄격한 신학 언어의 표피 아래 녹아 있는 절망과 희망, 욕망과 증오, 두려움과 떨림, 외로움과 열망, 죄의식과 용서, 이런 원초적인 인간 경험의 서사는 시공간을 관통하며 학생들의 경험과 조율되어 그들의 삶에 신선한 파장을 불러오곤 한다. 그러므로 신학 교육은 교리로 화석화한 개념 안쪽의 역사적 배경과 사목적 고민들을 길어 올려 오늘 우리의 삶과 조율하는 작업이 늘 동반되어야 한다. 

 

수많은 신학 개념들 가운데, 학생들이 예외 없이 난감함과 거부감을 표현하는 것 중 하나가 원죄에 관한 교리다. ~ 중략 ~

 

교회가 주목하는 것은 원죄로 귀착한 아담의 죄가 보여주는 죄의 보편성과 죄 속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연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죄의 본질을 교만, 즉 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주인으로 행세하고 군림하려는 욕망으로 설명하는데, 현대의 신학자들은 교만이 보편적인 인간의 죄성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판단하고 좀 더 다양하고 섬세한 시각으로 죄의 본질을 바라본다. 그중에서도 전통과 현대신학적 비판을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죄론에 접근하는 미국의 신학자 캐트린 태너(Kathryn Tanner)의 설명에 울림이 있다. 태너는 죄를 “인간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하고 싶어 하시는 하느님의 의도와 희망을 거부하는 인간의 고의적인 실패”라고 설명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본성인 사랑을 지침 없이 내어주며 인간에게 다가오시는데, 인간은 하느님을 닮아 창조된 자신의 본성, 인간됨을 거부하고, 눈을 가리고 부정하며 고립과 불행을 자처한다는 것이다. 

 

한 인간의 죄, 한 인간의 잘못된 선택은 자기 자신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공동체와 사회를 위협한다. 인간됨을 거부하는 개인의 지극히 사소한 몸짓이 복잡한 사회 관계망 속으로 들어올 때 어떤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팬데믹을 끼고 사는 요즘의 사회는 너무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몇 사람의 비뚤어진 시각과 선택이 정치적 욕망, 종교적 행위와 결합할 때 어떻게 모든 사람이 짊어져야 할 책임으로 확대되는지, 또 그의 도발을 무시하거나 간과할 때 모두가 어떻게 ‘죄의 값’을 치르게 되는지 말이다. 이 촘촘한 삶의 그물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죄에서 자유롭거나 안전할 수 없다. 

 

함민복 시인이 말한 것처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 구분하며 살 수 있게” 말로만 죄를 느끼지 말아야 할 일이다. “건성으로 느껴 죄의 날 무뎌질 때 삶은 흔들린다.”(함민복, 「죄」에서) 

 

조민아 지음, <일상과 신비>(삼인, 2022. 12. 23.), 121, 1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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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는 죄의 뿌리 깊음과 죄의 보편성,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죄의 연대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생겨난 기독교의 교리이다.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은 주변에 해를 끼치게 되고, 

그 영향은 저마다 엮여 있는 삶의 반경만큼 번져간다. 

번져가는 과정에서 확대되기도 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 하나의 계기가 되어 죄의 악순환이 벌어질 때, 

그리스도교는 그렇게 커가는 사태를 원죄라는 말로 설명해 보려 한 것이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늘 내 행위를 신중히 해야 한다. 

늘 실수하는 인간이지만 그 실수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남도 실수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모른 척 눈감아 주는 일도 필요하다. 

원죄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향린 목회 630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