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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나눔

사랑인가, 집착인가

by phobbi posted Jul 14, 2026 Views 1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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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7-14

2026. 07. 14.

 

사랑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요? 사랑한다는 것은 본다는 걸 의미합니다. 본다는 것. 여러분이 보지도 않는 것을 무슨 수로 사랑하겠습니까? 그리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강한 감정이 밀려든다면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말하죠. 사랑이란 맹목적인 것이라고. 헛소리에요. 사랑만큼 명석한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명석한 게 사랑이에요. 맹목적인 것은 집착이에요. 멍청하기 때문에 집착합니다. 집착은 거짓 믿음에 기초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 부르죠? “난 당신과 사랑에 빠졌어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뭐라고요? 나를 사랑하는 건가요, 아니면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건가요? 사랑에 빠졌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사랑에 빠졌다는 것, 나는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나는 당신을 소유하고 싶다라는 뜻이에요. 당신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나는 나를 위해 당신을 원한다, 나는 당신 없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감정적으로 당신에게 의존한다, 나는 당신 없이 행복할 수 없다를 뜻해요.

 

이것은 마약입니다. 질병이에요. 여러분의 문화와 제가 속한 문화는 사랑이 최고의 덕이라고 말합니다. 쓰레기일 뿐이지요. 하지만 누가 감히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눈이 멀어 있습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여러분은 자기 자신으로 꽉 차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해요. 여러분이 바라는 이미지를 그 사람에게 투사한 후 그것을 사랑하는 겁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때에는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만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왜 낙담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낙담의 진원지는 어디인가요? 낙담은 여러분이 주입받은 프로그램에서 옵니다. 그곳이 낙담의 진원지예요. 나를 짜증 나게 만드는 어떤 사람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때 저는 때로 놀랍니다. 저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이러한 행동에 노출되었는데도 그는 어째서 방해받지 않는가? 나는 왜 방해받는가? 무언가 나에게 잘못이 있다.” 당시 나는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데 골몰해 있었습니다. 내가 낙담하지 않는다면 그건 좋은 일이죠. 그런 다음에 나는 어떤 것을 제안하거나 어떤 일을 할 수도 있겠지요. 이제 나는 변화의 문으로 들어갈 자격을 얻고 변화를 수반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아니에요. 내 망원경이 초점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엄청난 도움을 받았어요. 누군가와 어려움을 겪고 낙담할 때마다, 저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봐, 토니! 너에게 뭔가 잘못이 있어. 너와 내가 앉아서 이것을 깊이 살펴보면 어떨까, 괜찮지?”

좋지, 하지만 이걸 정말로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 미치겠다.”

아니야, 넌 지금 낙담해 있어. 이 낙담은 그에게서 오는 게 아니고, 너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야. 네가 주입받은 프로그램에서 오는 거라고.”

 

저는 봅니다. 갑자기 전망이 생겨요. 거리가 있습니다. 이해가 있어요. 결국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얻기 어려울 수 있어요. 여러분에게는 아주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공평합니다. 사랑은 공정해요. 사랑은 봅니다. 사랑은 편견을 갖지 않습니다.

 

앤소니 드 멜로/민제영 옮김, <깨침과 사랑>(분도출판사, 2016. 10. 6.), 14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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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대는 형제자매의 눈 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그대 눈 안에 있는 나무 막대는 알아채지 못합니까?”(마태복음서 73, 새한글성경)

 

선생님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 말고, 자기자신을 모르는 것을 걱정해라.”

(子曰: 不患人知不己知, 患不知人也. 論語, 學而, 16.)

 

사랑이 집착이 되지 않으려면,

사랑이 나르시시즘에만 매몰되지 않으려면,

나를 살펴야 한다.

 

사회화되면서 나도 모르게 주입된 것들을 돌아보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빗대어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어제와 다른 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훈련이다.

 

앤소니 신부님이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전망 속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새로운 이해 속으로 들어가 사랑을 되살려야 한다.

 

- 향린 목회 61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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