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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을 이어가며(박영숙 살림터 예배) ㅣ 2026-03-15 ㅣ 한문덕

by phobbi posted Jun 11, 2026 Views 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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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3-15

믿음의 길을 이어가며

(히브리서 12:1-3)

 

1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2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내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박영숙 선생님의 넓은 품]

 

오늘 우리는 박영숙 살림터 리모델링 감사 예배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동안 박영숙 선생님의 뜻을 이어 모든 이들의 삶이 좀 더 생명력이 넘치고 평화롭고 평등하도록 다양한 사업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박영숙 살림터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우리가 박 선생님의 믿음과 뜻을 이어 선생님의 추구하셨던 살림의 사역들을 더 단단하고 촘촘하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박 선생님과 함께 삶을 같이 하셨던 분들이지만, 저는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박 선생님과 관련해서는 그저 몇 장면이 떠오를 뿐입니다. 첫째는 제가 향린의 전도사 시절 뵈었던 박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박 선생님은 주일이면 일찍 오셔서 언제나 예배당 뒤편에 앉으셔서 조용히 책을 읽으시곤 했는데, 지나가면서 제가 살짝 곁눈질로 보면 일본어로 된 책들이었습니다. 인사를 드리면 밝고 인자한 미소로 대해 주셨던 기억입니다. 둘째는 몸이 아프셔서 고생하실 때입니다. 병원으로 때로 댁으로 가끔 찾아뵈면, 그때도 여전히 품위를 잃지 않고 고결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신 모습으로 목회자들을 맞이해 주시던 그 장면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아프시면서 더 수척해지신 것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참 사람의 향기를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은 장례를 치를 때입니다. 당시 담임목사님이 해외 출장 중이셔서 제가 장례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큰 어른이시라 걱정과 염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김성재 교수님께서 오셔서 예배는 향린이 다 담당하고, 장례 전반의 수고들은 여성단체가 해 주도록 정리를 해 주셔서 무사히 치렀습니다. 그때 제가 잊을 수 없던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화장예식을 할 때입니다. 화장 예식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저는 오신 조문객들에게 나오셔서 박 선생님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씀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약 1시간 가량 이화여대 신인령 총장을 비롯해 정말 많은 분들이 박 선생님과 겪었던 일들을 나누며 울고 웃고 했던 장면입니다. 그 때서야 저는 박 선생님의 품이 얼마나 넓고 깊은가를 깨달았습니다.

 

[믿음의 증인들]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할 때 과연 제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도 그 물음을 오래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연 인간의 오감으로 붙잡을 수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고 알고 섬길 수 있다는 것인가?” 오래오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먼저, 그 하나님을 몸으로 살아낸 증인들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가 말하듯, 우리보다 앞서 믿음의 길을 가신 구름떼와 같은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지요. 박영숙 선생님, 안병무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바울 사도가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하고, 예수께서 나를 본 사람이 곧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믿음의 길을 가신 박영숙 선생님, 안병무 선생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 길을 갑니다.

 

[기억의 공간에서 사건의 현장으로]

 

박 선생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뜻을 이어가려고 모인 우리들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을 넘어서 믿음의 선배들이 살아냈던 사건을 오늘에 맞게 재현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 우리에게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가자고 제안합니다. 안병무 선생님은 오클로스(Minjung)’를 통해 민중을 억압하는 신학적·사회적 굴레를 벗기려 하셨다면, 박영숙 선생님은 여성들을 얽매고 있던 가부장제와 불평등의 사슬을 끊어내는 삶을 사셨습니다. 두 분이 일궈놓은 터전 위에서, 오늘 우리가 여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시대적 죄악(차별, 혐오, 무관심, 기후 위기, 어그러진 성 정의, 돌봄 부재)이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림터를 리모델링한 것도 우리가 다시금 신발 끈을 조여 매고 힘차게 달려 나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달리기는 이어달리기입니다.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신앙의 대를 이어가는 장거리 경주입니다. 안 선생님은 민중신학을 통해 이 땅의 고난 받는 이들의 대변자가 되고자 하셨고, 박 선생님은 민중 예수의 마음으로 여성 인권 운동과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실천을 꽃피우셨습니다. 향린교회와 박영숙살림터는 안 선생님과 박 선생님의 바통을 이어받는 경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낙심하지 않고 십자가를 참으셨던 예수만을 바라보라고 우리에게 조언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안선생님과 박선생님이 넘겨주신 정의와 평화, 자유와 평등, 생명의 살림의 바통을 쥐고 달려야 할 것입니다.

 

박영숙 살림터의 리모델링은 단순히 벽과 바닥만을 바꾸고 공간을 꾸민 것만이 아닙니다. 진정한 리모델링은 이 공간을 채우는 우리 존재의 변화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공간은 죽어가는 것을 살려내는 생명의 현장이 되어야 하고 이곳을 드나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박영숙 선생님의 뜻을 몸으로 살아내는 살아있는 기념비가 되어야 합니다. 향린교회와 박영숙 살림터 그리고 이 길을 걷는 모든 이들이 이제 두 분의 증언을 가슴에 품고, 다시 세상이라는 현장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박영숙 살림터라는 이 공간이, 그리고 이 공간을 드나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살아있는 설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생명의 근원이시며 살림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는 박영숙 선생님의 고귀한 생애가 깃든 이 살림터를 새롭게 단장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먼저 우리보다 앞서 믿음의 길을 걸어갔던 구름 떼와 같은 증인들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안병무 선생님의 뜨거운 민중 사랑과 박영숙 선생님의 온화하면서도 강인했던 살림의 영성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삶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고,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 이 리모델링된 공간이 단순히 깨끗한 벽과 바닥에 머물지 않게 하옵소서. 이곳이 억눌린 자들의 탄식이 소망으로 바뀌는 곳이 되게 하시고, 소외된 이들의 눈물이 닦여지는 위로의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가부장제의 벽을 허물고 평등의 밥상을 차렸던 선생님의 손길이 이곳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의 손길을 통해 재현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이제 믿음의 이어달리기를 계속하고자 합니다. 때로는 세상의 거센 풍파에 낙심하고 지칠 때도 있겠지만,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활의 기쁨을 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게 하옵소서. 차별과 혐오의 시대를 넘어, 서로를 살리고 돌보는 살아있는 기념비로 우리 자신을 가꾸어 가게 하옵소서.

 

박영숙 살림터와 향린교회, 그리고 이 길에 동행하는 모든 이들 위에 하나님의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축도

 

평화의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무지에서 지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행에서 평안으로, 오류에서 진리로, 죄에서 승리로 옮기셨습니다.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과 거룩한 영의 사귐이 생명을 일구고 평화를 사랑하여 평등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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