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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기도회

한 므나의 살림 | 2026-06-30 | 유영상

by 유영상 posted Jun 30, 2026 Views 2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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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6-30

2026년 6월30일(화) 19:00, 세종호텔 앞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제139차 거리기도회

 

 

한 므나의 살림

(19:11-27)

 

유영상 목사 

 

[들어가며]

 

이 비유는 비극입니다. 한 므나를 정성스레 지킨 이가 도리어 면박을 당했기 때문이요, 이 폭압적인 주인을 오랫동안 예수 그리스도로 읽어 왔던 탓이요, 이 비유를 통해 개탄스러운 오늘날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에는 로마제국 기득권의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선명히 새겨져 있고,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이 현장에는 불안정 노동자의 권리가 답보 상태에 머무르는 현실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를 피하지 않습니다. 정면으로 반박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에둘러 말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친절히 설명하는가 하면, 현실을 풍자하여 참뜻을 의도적으로 감추며 은밀히 저항합니다. 양측의 대비를 극대화시켜 우리를 그 현장의 적극적인 해석자로, 더 나아가 등장인물과 같이 체감하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시는가? 오늘 열 므나의 비유가 우리를 그 현장으로 끌어당깁니다.

 

 

[성서 주해]

 

이 비유는 대략 이렇습니다. 귀족 신분이자 곧 왕이 될 주인과 그의 종 열 명이 등장합니다. 주인은 먼 나라로 떠나 왕위를 직접 받아 오려 하기 전에 자신의 종 열 명에게 한 므나씩 주어 그것으로 장사를 하라 명합니다. 그리고 그 귀족은 집을 떠납니다. 그때 그의 시민들이 그가 왕위를 이어받는 것을 반대하죠. 하지만 실패합니다. 그리고 귀족은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 얼마나 벌었는지 묻습니다. 첫째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둘째 종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벌었다고 말합니다. 이 두 종은 이제 왕이 된 주인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고 수익에 상응하는 권력(고을 통치)을 약속 받습니다. 그런데 셋째 종은 수익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균일하게 받은 한 므나를 고이 간직했다가 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죠. 그리고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인님은 야무진 분이라서, 맡기지 않은 것을 찾아가시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시므로, 나는 주인님을 무서워하여 이렇게 하였습니다.”

셋째 종은 주인의 실태를 폭로합니다. 맡기지 않은 것과 심지 않은 것, 물건의 주인도 텃밭의 주인도 아닌 그 주인이 그동안 어떻게 해 왔는지, 또 그런 주인을 자신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실토합니다. 그가 한 므나를 간직한 방식은 사실 농민들의 전형적인 저항 방식이었습니다. 후대 랍비 문헌인 미쉬나(m. Baba Metzia 3:1011)가 보여주듯, 맡겨진 돈을 땅에 묻어 두는 것은 도난이나 손실의 법적 책임을 면하는 가장 안전하고 보수적인 보관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몸을 사린 처신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관할하는 은행에 맡겨 재화를 부풀리는 그 시스템에 복무하기를 거부하고, 자산을 그 회로 바깥에 묶어 둔 저항이었습니다.

주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첫째, 둘째 종을 대할 때와 정반대입니다. 그를 악한 종이라 칭하죠. 그리고 심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또 왜 은행에 예금해서 증식하지 않았느냐 질타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 고이 보관해 둔 한 므나를 빼앗아서 열 므나를 벌어들인 첫째 종에게 헌납할 것을 명합니다. 하지만 그 종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님, 그는 열 므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에둘러 거절한 것입니다. 분을 이기지 못한 주인은 으름장을 놓습니다. “가진 사람은 더 받게 될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자기들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나의 이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여라.”

보통 여기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여겨졌습니다. 주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 떠난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 승천하심이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은 악한 종이 벌을 받은 것이고, 셋째 종의 한 므나가 첫째 종에게 넘겨진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 이가 사람이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초과 보상을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절대 주권을 상징하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풍성한 은혜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연대하는 우리에게 묻겠습니다. 과연 빼앗겼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폭압적인 주인이 예수라고요?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 폭압적인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누가복음서에서 주인의 원어인 퀴리오스는 예수님만이 아니라 평범한 주인에게도 쓰입니다. 같은 19장의 나귀 주인이 그렇습니다(19:33). 심지어 16장에서는 재물(맘몬)마저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니 이 주인이 곧 예수님으로만 해석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뿐입니까. 주인은 왜 은행에 맡겨 이자를 불리지 않았느냐고 다그칩니다. 그러나 율법은 동족에게 이자 받기를 금합니다(23:19). 그런 이자를 갈망하는 자가 예수님일까요? 예수님은 율법을 새롭게 풀어내신 분이죠. 그러나 가난한 동족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그 정신, 약자를 지키려는 그 마음만은 결코 뒤엎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폭력으로 빼앗고 율법을 짓밟는 이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도리어 그분이 맞서신 착취의 얼굴입니다.

한 므나를 열 므나로 불리길 욕망하고, 맡기지도 않은 것을 제 것이라 주장하고, 한 사람에게 두 사람 내지 열 사람의 노동을 강요하다 끝내 해고의 궁지로 내모는 세상. 내 현장뿐 아니라 또 다른 부당해고의 현장에도 기꺼이 연대하는 의로운 이의 삶. 바로 여기서 세종호텔 연대의 현장을 봅니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보관한 한 므나]

 

2021년 겨울, 사측은 코로나19를 명분 삼아 15명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습니다. 그 중 민주노총 조합원은 12, 그 칼날은 유독 노동조합을 지킨 이들에게로 향했습니다. 그 가운데, 이십여 년간 호텔 주방을 지켜 온 요리사 고진수 동지가 있었습니다.

숫자가 그 속내를 드러냅니다. 한때 250명에 이르던 정규직이 몇 해 만에 20명 남짓으로 줄었습니다. 그 빈자리는 비정규직과 하청으로 메워졌지요. 다섯 사람이 하던 일을 한 사람에게 떠넘기고, 그 한 사람이 버거워 비틀거리면 그마저 잘라냅니다.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다섯 므나를 내놓으라던 그 주인의 셈법이 바로 오늘 이 도시 한복판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적은 사람에게서 더 많은 노동을 짜내고, 셈에 맞지 않는 이는 가차 없이 도려내는 셈법. 비유 속 주인이 한 므나를 고이 간직한 셋째 종을 악한 종이라 몰아세웠듯, 사측도 노동자에게 따집니다. “경영위기니 양보하라고

해고 이듬해 호텔은 보란 듯이 흑자로 돌아섰고 객실 수익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도 사측은 "복직만은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노동위원회도 법원도 "경영이 어려웠으니 해고는 정당하다"며 면죄부를 건넸습니다. 기댈 언덕이 모두 무너졌을 때, 고진수 동지는 8차선 도로 위로 솟은 철탑에 올랐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와 숨 막히는 더위를 견디며 오직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으로 버텼습니다.

올해 1, 고진수 동지는 마침내 땅을 밟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침표가 아니라 더 넓은 연대의 시작이었습니다. 땅으로 내려온 그가 곧장 향한 곳은 또 다른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교내 성폭력을 고발했다가 도리어 해임된 공익제보자, 지혜복 교사. 그 역시 교육청 옥상에 올라 복직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고진수 동지는 그곳으로 향합니다. 그는 연대했고, 구속됩니다.

이 연대가 자신에게 어떤 위협으로 다가올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강한 연대의 힘에 이끌려 그곳으로 갑니다. 몸으로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비유의 한 장면을 다시 봅니다. 주인이 셋째 종의 한 므나를 빼앗아 이미 열 므나를 가진 자에게 주라 했을 때, 곁에 선 종들이 입을 열지요. “주인님, 그에게는 이미 열 므나가 있습니다.” 짧은 한마디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진 자에게 더 몰아주려는 셈법에 대한 거역이요, 자신과 같은 동료 곁에 서겠다는 연대입니다. 그렇게 고진수 동지는 지혜복 교사 곁에 섭니다.

지난 5, 법원은 그가 세종호텔 로비에 들어가 정리해고 철회와 해고자 복직을 외친 투쟁을 두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4년을 일한 일터에 잠시 들어선 것이 어찌 죄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동지는 다른 일로 여전히 갇혀 있었고, 옥중에서 스무 날이 넘도록 곡기를 끊으며 불구속 재판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612, 구속 56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안심하기엔 이릅니다. 정리해고는 철회되지 않았고, 해고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재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다시 바라봅니다. 셈에 맞지 않는다고 도려내진 자리, ‘악한 종이라 지탄받으며 빼앗긴 자리. 고진수 동지가 선 곳이 바로 거기였습니다.

비유는 여기서 막을 내립니다. 빼앗긴 종이 어찌 되었는지, 그 곁에 누가 있었는지 더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죄인으로 몰려 처형당하신 한 분을, 우리는 십자가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빼앗는 주인의 왕좌가 아니라, 빼앗기는 자의 자리에 계신다고. 고진수 동지가 홀로 매달린 듯 보였어도 결코 혼자가 아니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가며]

 

그래서 이 비유는 비약입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저항과 연대. 불가능해 보이는 이것들을 모두 가능케 한 비약입니다. 이 비약을 통해 연대하는 모든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섭니다. 그렇게 우리는 마침내 비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끝내 돌아갈 것입니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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