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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기도회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ㅣ2026-06-10 ㅣ 한문덕

by phobbi posted Jun 11, 2026 Views 3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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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6-10

수요평화 거리기도회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19:36-42)

 

한문덕 목사

 

[두 행렬]

 

  사랑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서 본문은 유월절 절기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입성 장면만 나오지만 유월절이 되면 언제나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그래서 평소 4-5만명의 인구가 사는 예루살렘에 2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예루살렘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에 하나로 알려졌기 때문에 유월절 축제에는 유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행객들도 많이 몰려 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의 치안 유지와 혹시 발생할 지도 모르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는 명목하에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제국의 기병대와 보병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평소에 본디오 빌라도는 전임 총독들처럼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가이사랴 해변에서 살지만, 유월절과 같은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의 치안을 감시하기 위해 예루살렘이 한눈에 보이는 안토니아 요새의 로마 주둔군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을 탄 기병들, 보병들, 가죽 갑옷, 투구들, 높이 솟은 창들, 금속에 반사되어 빛나는 태양, 휘날리는 깃발과 깃대 위 끝에 앉은 황금 독수리가 보이고, 행군하는 군화 발 소리들, 진군을 알리는 북소리, 쩔렁거리는 말고삐 소리들이 서쪽으로부터 웅장하게 들려옵니다.

  먼지를 일으키며 수도 없이 밀려오는 본디오 빌라도의 군대를 바라보며 유대 민중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뭣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겠지만 유대 독립을 꿈꾸는 저항가들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들을 쏘아보았을 것이고, 평범한 유대 민중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이들의 행진에 근심 어린 눈길을 보냈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사실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위엄 높은 군마가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이라고 소리치지만, 예수님은 에쿠스(군마)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포니(조랑말)를 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귀를 타고 오는 이 임금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예언자 스가랴의 예언에 따르면, 그는 전차와 군마와 활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나라들에게 평화를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로마제국의 입성과 정반대 편에 서 있습니다. 그날 예루살렘에는 두 종류의 평화가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한쪽 문으로는 로마 총독 빌라도가 군마를 끌고 들어오는 제국이 말하는 평화입니다. 저항하지 말라. 침묵하라. 로마의 질서 안에 머물라. 그러면 너희에게 평화를 주겠다고 말하는 그런 평화입니다.

  그러나 다른 쪽에는 예수님의 평화가 옵니다. 칼도 없고, 군대도 없고, 위협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길에 겉옷을 깔고 외쳤습니다.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웁니다.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 한가운데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이,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우시는 것입니다. 왜 우셨을까요? 예루살렘이 평화를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예루살렘도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많은 이들은 군마가 주는 평화를 더 현실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칼이 지켜주는 평화, 힘이 보장하는 평화, 누군가를 침묵시켜 얻는 평화를 평화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네가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 앞에도 여전히 두 행렬이 지나갑니다. 군마의 행렬과 나귀의 행렬, 제국의 평화와 하나님 나라의 평화, 전쟁으로 유지되는 질서와 눈물로 시작되는 평화의 길. 우리는 어느 행렬에 서야 할까요?

 

[전쟁이 지우는 것들]

 

  예수님의 눈물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진짜 평화인가? 평화에 이르는 길은 무엇이며, 진정 길이라 말할 수 있는 평화는 어떤 평화인가? 우리가 평화의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짜 평화에 속아 결국 전쟁과 폭력의 길을 택하고야 말 때, 우리의 삶이 지워지게 됩니다.

  전쟁은 먼저 집을 지웁니다.

  어제까지 아이들이 뛰어놀던 마당이 무너집니다. 저녁마다 가족이 둘러앉던 밥상이 부서집니다. 창가에 놓아두었던 화분이 흙더미에 묻히고, 잠들기 전 읽던 책의 책갈피가 잿더미 속에 사라집니다. 어머니가 쓰던 안경, 아버지가 고쳐 놓은 문고리, 아이가 벽에 그어 놓은 키 자국, 그런 작고 사소한 일상들이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전쟁은 이름을 지웁니다.

  어제까지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누군가의 친구였던 사람이 다음 날 아침에는 숫자가 됩니다. 사망자 몇 명, 실종자 몇 명, 부상자 몇 명. 전쟁 한복판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찾지만, 그들의 약속, 그들의 외침, 그들의 이름은 사라지고 그저 숫자만이 남습니다.

  전쟁은 관계를 지웁니다.

  전쟁은 이웃을 적으로 만듭니다. 함께 밥 먹던 사람을 의심하게 만들고, 같은 동네에서 자란 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같은 말을 쓰던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게 만듭니다. 전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깊은 끈을 잘라 버립니다. 우리 민족도 그 아픔을 압니다. 한반도의 전쟁은 끝난 전쟁이 아니라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전쟁입니다. 한 집안이 갈라지고, 한 마을이 갈라지고, 같은 민족이 서로를 원수라 부르며 살아온 세월이 자꾸 길어집니다. 전쟁은 총성이 멈춘 뒤에도 끝나지 않습니다. 전쟁은 기억 속에 남고, 말속에 남고, 침묵 속에 남고, 두려움 속에 남습니다.

  전쟁은 진실을 지웁니다.

  전쟁을 계속하려면 거짓말이 필요합니다.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저쪽은 악마라고 말해야 합니다. 저 사람들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쟁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언제나 기억을 지우려 합니다. 누가 먼저 울었는지, 누가 먼저 빼앗겼는지, 누가 이름 없이 묻혔는지, 누가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는지를 지우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워진 기억 위에는 평화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지워진 기억 위에는 또 다른 폭력의 씨앗만 뿌려질 뿐입니다.

  전쟁은 미래를 지웁니다.

  전쟁은 오늘의 생명만 죽이지 않습니다. 전쟁은 내일의 가능성까지 죽입니다. 학교가 무너지면 아이들의 배움이 사라집니다. 병원이 무너지면 치료받을 기회가 사라집니다. 밭이 불타면 다음 계절의 밥이 사라집니다. 부모가 죽으면 아이의 세계가 무너집니다. 아이가 죽으면 부모의 내일이 사라집니다. 전쟁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게서도 미래를 빼앗습니다. 전쟁은 세대를 건너갑니다. 포탄 소리를 들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 소리에 몸을 웅크립니다.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았다는 사실마저 죄책감으로 안고 살아갑니다. 전쟁은 끝난 뒤에도 사람의 몸과 마음 안에서 계속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쟁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웁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그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훈련시킵니다. 상대를 바라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상대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상대의 울음소리를 듣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야 방아쇠를 당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죽는 사람만 파괴하지 않습니다. 죽이는 사람도 파괴합니다. 전쟁은 피해자의 인간성만 짓밟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인간성도 무너뜨립니다.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세계,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미워해야 하는 세계, 그것이 바로 전쟁이 만드는 지옥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보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평화를 알지 못할 때, 그 도시가 어떤 길로 가게 될지를 보셨습니다. 아이가 뛰놀던 마당이 무너지는 길, 이름이 숫자가 되는 길, 이웃이 적이 되는 길, 진실이 지워지는 길, 미래가 폐허가 되는 길, 하나님의 형상이 짓밟히는 길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셨습니다.

  그 눈물은 약한 사람의 눈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의 눈물입니다. 제국의 군마가 평화를 약속할 때, 그 군마 뒤에 남겨질 폐허를 미리 보는 눈물입니다. 사람들이 전쟁을 현실이라고 부를 때, 그 현실이 결국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아는 눈물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전쟁은 너무 많은 것을 지웁니다. 집을 지우고, 이름을 지우고, 관계를 지우고, 진실을 지우고, 미래를 지우고, 마침내 사람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지웁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평화는 지워진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일입니다. 무너진 관계를 다시 잇는 일입니다. 감추어진 진실을 다시 드러내는 일입니다. 빼앗긴 미래를 다시 열어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일입니다.

 

[나귀의 길을 준비하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평화는 전쟁이 터진 뒤에야 급히 꺼내 드는 응급처방이어선 안 됩니다. 평화는 미리 준비되어야 합니다. 평화는 미리 배워야 합니다. 평화는 미리 몸에 익혀야 합니다.

  전쟁은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준비됩니다. 사람들은 먼저 적을 상상합니다. 저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다고 말합니다. 저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저 사람들은 우리 것을 빼앗을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먼저 장벽을 세우고, 말속에서 먼저 칼을 갈고, 뉴스와 정치와 교육과 종교의 언어 속에서 먼저 적개심을 키웁니다. 그리고 어느 날 총성이 울립니다. 하지만 그 총성은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전쟁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혐오의 말 속에서, 냉소의 웃음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보아도 아무렇지 않은 무감각 속에서, 전쟁은 이미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도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평화도 미리 준비되어야 합니다. 평화도 우리의 말속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우리의 눈빛 속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우리의 밥상과 예배와 거리의 기도 속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나귀의 길은 평소에 배우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길입니다. 군마의 길은 쉽습니다. 두려움을 부추기기만 하면 됩니다. 적을 만들면 됩니다. 힘을 과시하면 됩니다. 더 큰 소리로 외치고, 더 강한 무기를 가지며, 더 높은 장벽을 세우면 됩니다. 군마의 길은 사람의 본능을 자극합니다. 무서우니 먼저 공격하라. 손해 보기 전에 먼저 빼앗아라. 살아남으려면 강해져라. 이것이 군마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나귀의 길은 다릅니다. 나귀의 길은 먼저 멈추어 보는 길입니다. 상대를 적으로 보기 전에 사람으로 보는 길입니다. 숫자 뒤에 있는 이름을 묻는 길입니다. 분노하기 전에 슬퍼할 줄 아는 길입니다. 심판하기 전에 울 줄 아는 길입니다. 이 길은 저절로 몸에 배지 않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훈련해야 합니다. 먼저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으셨습니다. 도성을 바라보셨습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셨습니다. 평화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보지 않으면 울 수 없고, 울지 않으면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가자의 폐허를 볼 때, 그저 먼 나라의 뉴스로만 보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제주 4.3의 침묵을 들을 때, 그것을 지나간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보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생각할 때, 그것을 정치적 구호로만 소비하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 그 안에 있는 어머니들과 아이들과 노인과 청년의 이름을 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말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전쟁은 말에서 시작됩니다. “저들은 사람이 아니다.” “저들은 없어져야 한다.” “저들의 고통은 어쩔 수 없다.” 이런 말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폭력은 정당한 일이 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지 않는 말, 고통을 고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말, 죽음을 숫자로만 처리하는 말은 이미 전쟁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따르는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적을 만드는 말, 혐오를 재미로 소비하는 말, 누군가의 고통을 조롱하는 그 말을 끊어야 합니다.

  셋째로, ‘아니오를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좋게 좋게 넘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평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 갈등도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평화는 불의한 평화에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압니다. 제국이 폭력을 질서라고 부를 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전쟁을 안보라고 포장할 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약자의 희생을 불가피한 비용이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니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라고도 말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라고 말해야 합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에게, 대화의 언어를 만들려는 이들에게 라고 말해야 합니다. 무너진 관계를 다시 잇고, 지워진 이름을 다시 부르고, 빼앗긴 미래를 다시 열려는 모든 노력에 라고 말해야 합니다.

  넷째로, 공동체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평화의 길을 오래 걸을 수 없습니다. 나귀의 길은 외로운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께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예수님 곁에도 제자들이 있었고, 길에 겉옷을 까는 사람들이 있었고, “하늘에는 평화를 외치는 갈릴리 민중들이 있었습니다. 평화는 혼자 마음속으로만 품는 감상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연습하는 공동체의 길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 훈련장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단지 위로받는 시간이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가 세상의 폭력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다시 배우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예배 속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법을 배웁니다. 무릎 꿇을 줄 아는 사람은 함부로 남을 짓밟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배 속에서 회개하는 법을 배웁니다.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 의로움에 취해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배 속에서 성찬의 식탁을 배웁니다. 한 식탁에 앉는 법을 배운 사람은 쉽게 이웃을 적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평화의 훈련이고, 기도와 찬송 또한 평화의 훈련입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고, 약한 이의 자리를 먼저 살피는 것, 모두가 평화의 훈련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거리에서 드리는 수요평화 거리기도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세상을 단숨에 바꾸기 위해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여기서 다른 세상을 미리 연습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는 평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훈련받고 있는 것입니다. 힘이 있어야 산다는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는 섬김이 생명의 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군마가 현실이라고 말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는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이 참 현실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귀의 길은 약한 길이 아닙니다. 나귀의 길은 세상이 가장 두려워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폭력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폭력을 닮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미움에 맞서면서도 미움의 사람이 되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불의에 저항하면서도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군마가 지배하던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칼을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침묵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힘으로 누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셨고, 말씀하셨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평화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길을 배워야 합니다. 평화는 감상이나 구호가 아니라 훈련이고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눈물과 선택]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거리에서 묻습니다.

  우리는 어느 행렬에 서야 할까요? 군마의 행렬은 언제나 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힘이 있어야 평화가 온다고 말합니다. 더 강한 무기, 더 높은 장벽, 더 많은 적대가 우리를 안전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길로, 눈물의 마음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네가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오늘 우리가 알게 하소서.

전쟁을 평화라고 부르는 거짓을 알아보게 하소서.

사람의 이름을 숫자로 만드는 폭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게 하소서.

군마의 행렬이 아니라 나귀의 행렬 곁에 서게 하소서.

평화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를 배우고,

평화를 훈련하고, 평화를 살아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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