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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되는 순간에 | 2026-03-08 | 김유경

by 유영상 posted Mar 13, 2026 Views 13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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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6-03-08

3.8 청년주일

흙이 되는 순간에

(3:17-19; 3:17-21; 5:3-12)

 

김유경 교우

 

 

안녕하세요. 청년신도회의 김유경입니다.

오늘은 여성의 날이자 청년 주일입니다. 사실 오늘 예배를 준비하면서 그래도 청년 주일인데 여성 한 명, 남성 한 명 세우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몇 차례 들었는데요, 저와 예은님이 여성이기만 하지 않고 여성이자 청년이기에 이렇게 함께 하늘뜻을 펴게 되었습니다.

 

저는 it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SNS에서 많이 보시는 광고나 이벤트 같은 것들을 기획하고요. 사람들에게 우리 서비스를 알리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관심 두는 것들을 주변에 소문내는 걸 좋아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좋은 분들 이어서 만족하면서 직장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아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일에 대한 즐거움보다 나 다움을 잃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찾아오곤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희 회사는 스타트업인데요, 저를 포함해서 8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은 조직이다 보니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업무 범위도 굉장히 넓고 1인분의 몫을 감당하는 게 아니라 거의 2-3인분의 몫을 해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야근하는 날도 빈번하고요. 처음에는 이것이 싫지 않았습니다. 다같이 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고군분투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꽤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특성상 서비스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아야 하고, 투자 라운드를 도는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성과에 대한 압박이 점점 커졌습니다. 업무량은 더 많아졌고, 무리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제 일상은 점점 퍼석하게 메말라갔습니다. 저는 기업들이 그렇게 선호한다는 1인 가구 청년인데요, 지금과 같은 패턴으로 일을 하면 집안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끼니를 해먹고, 적당히 운동도 하고, 자기계발도 하면서, 친구를 만날 만큼의 여력이 잘 없습니다. 대체로 이 중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삶을 굴리는데요. 혹여 아프기라도 하면 이 모든 것을 다 놓치게 되기도 합니다.

 

몇달 전에 제가 늘 그렇듯 야근을 하다가 목이 말라서 정수기에 물을 뜨러 가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을 보며 걷고 있는데 텔레그램 알림이 보이더라고요. 열어보니 세종호텔 로비에서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현장 사진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제가 텔레그램을 잘 안보는데요, 밀린 메세지를 거슬러올라가보니 누가 언제 그 자리를 지킬 것인지 연좌농성 순서를 정하는 메시지들도 보였습니다. 자기 순서가 아님에도 먹을 것이나 핫팩 같은 것들을 가져다주시는 교우님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앞에서 저는 잠시 멈칫 했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 발 붙이고 살아 갈 땅이 되어주는 사람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내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곧 내 생명을 내어주는 것이라고요. 제가 멈칫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제가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내 생명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혹은 어디에 쓰고 싶은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에 대한 대답이 적어도 지금하고 있는 야근은 아닐 것 같았습니다.

 

창세기 3:19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죽어서 갑자기 삶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던 에덴에서의 모습처럼 살지 못하고, 하나님과 분리되어 일상의 순간이 자꾸만 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에게는 일에 매몰돼서 누군가의 기쁨에도, 아픔에도 뜨뜻 미지근했던 것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내가 흙으로 돌아간다고 느끼시나요?

 

누군가에게 기쁜 일이 생겼는데 깨끗한 마음으로 축하하지 못할 때, 분주함에 쫓겨 남들이 가진 것만큼 가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 눈 앞에 보이는 것 너머를 헤아리지 않게 될 때. 그럴 때 우리는 조금씩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창세기 27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는 흙에 생기를 불어넣으시고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감각하지 못하고 그저 흙이 되는 순간에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황폐함

에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삶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들은 우리에게 종종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AB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 때 A를 고르는게 너무나 합리적인데 어쩐지 마음에 거리낌을 느낄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A를 선택한다고 대단히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고 남들은 고민도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한참을 갈등하다 못내 B를 선택하는 것이 때때로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은 왜일까요?

 

정수기 앞에서 교우님들의 사진을 보고 멈칫했던 순간, 저는 흙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이웃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릴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앞에 놓여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혜윤 작가는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 안에서 만나야 한다. 살아있는 목소리가 없는 것도 우리가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없는 것도 아주 슬픈 일이므로 우리에게는 어둠 속에서 함께 나눌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바꾼다. 우선 이야기를 하면서 나부터 새롭게 바뀌고 싶다. 나의 누이는 너의 누이가 되고 나의 전투는 너의 전투가 되고 너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되고 너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 되고 그리고 다음번에는 우리 정말로 더 잘 사랑해야 한다. 처음에 사랑했던 것보다 더 많이

 

우리가 슬픈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슬픈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함께하는 너를 통해 조금씩 변하고, 다시 살아나기도 합니다.

 

향린교우 여러분, 아까는 제가 어떤 순간에 흙으로 돌아가는 것 같냐고 여쭤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다시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살아있다고 느끼시나요? 혹시 누군가로 인해 살아있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지 잠시 눈을 감고 15초만 떠올려봅시다.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그 말, 그 눈빛, 그 행동으로 여성이, 청년이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향린 교우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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