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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나사렛 강령과 예수운동 | 김희헌 | 2018-04-08

by 관리자 posted Jun 25, 2018 Views 15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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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8-04-08

나사렛 강령과 예수운동

 

눅 4:16~30 / 부활절 둘째 주일 (향린공동체 공동예배)

 

  

 

[우리가 맞고 있는 사태의 의미, 새로운 사명]

 

꽃샘추위로 날씨가 쌀쌀합니다. 원래 오늘은 향린공동체 4개 교회가 강단교류를 통해서 ‘말씀의 친교’를 나눌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길거리로 내몰아서 ‘고난의 친교’를 하게 하시고, 향린공동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찾아가도록 이끄십니다. 

 

지난 3월 30일 오전에 예고 없이 진행된 강제집행과 교회 폐쇄로 인해 강남향린교회만이 아니라 향린공동체 모두가 앓고 있습니다. 일주일 남짓 되는 기간 동안 이 사건에 대처해 오면서, ‘도대체 왜 이 사건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것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들었던 분노의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구심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이제 일종의 깨달음이 되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재개발 조합과 송파경찰서와 서울동부지법 집행관의 담합과 공동작전 수행의 증거가 나타나면서, 우리는 합법을 가장한 이 사건 밑에는 비리와 의혹들이 마치 고구마 넝쿨처럼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당한 이 일은 특이한 예외적인 사태가 아니라 합법과 관례라는 미명으로 힘없는 사람들의 땅을 빼앗는 일이 관습이 된 이 나라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요, 우리는 그 어두움 한 가운데 빠져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애초에 이 사건은 우리 공동체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단만 하더라도, 최근에 서울남노회 대원교회와 서울노회 삼일교회가 강제철거를 당했습니다.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지는 교회마저도 이러했으니, 다른 곳은 어떠했겠습니까?

 

오늘 두 분(전재숙, 조한정)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9년 전 용산4구역에 대한 강제집행으로 인해 참사를 겪었는데,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강제집행으로 땅을 빼앗는 일은 반복되고 있습니다. 뉴타운 건설 등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이루어진 강제퇴거 행정집행이 지난 4년 동안 무려 7만8천 건에 이른다고 합니다. (2018.04.07, 「경향신문」, 9) 또한 지난 10년 동안 자기 땅을 부당하게 빼앗긴 사람들이 30만 명에 달한다는 참혹한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고난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지난 수요일 경찰청 앞 기도회에서는 서촌의 궁중족발 사장님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작년 11월 강제 집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손가락 4개가 부분 절단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오늘 예배에서 증언하였듯이 같은 시기의 장위동 철거현장에서는 강제집행을 막을 길이 없어서 주민대책위원장(조한정)이 칼로 자신을 찔러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자기 땅을 빼앗긴 사람들의 고통을 통해서 돈에 눈 먼 물신숭배로 혼연일체가 된 이 사회의 질서를 보게 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업과 경찰과 사법기관이 벌여온 공모는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남향린교회가 폐쇄당한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되면서, 우리는 이 현실에 대한 책임감과 자책감을 점점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향린공동체가 시대적 죄악의 올가미에 걸려 있다는 현실에 대한 자각은 물신숭배와 싸워야 할 믿음의 사명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점점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왜 이 사건이 우리 공동체에게 벌어졌는가?’ 하는 물음을 물으면서, 우리는 믿음의 새로운 사명을 세우게 됩니다. 

 

향린 공동체의 관심은 교회 하나 더 짓는 것에 있지 않고, 우리 시대에 예수운동을 생생하게 전개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이 사회와 민중들에게 복음이 되는 길을 열어가는 예수운동에 우리는 주목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열쇄를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발표한 선언에서 찾습니다. 

 

  

 

[나사렛 강령과 예수운동의 원리]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신 ‘취임설교’입니다. 성경구절은 예언자 이사야의 기록(61:1-2)에서 왔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마침내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취임설교’는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구절을 ‘나사렛 선언’ 또는 ‘나사렛 강령’(Nazareth Manifesto)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선언은 예수운동을 펼쳐나갈 모든 신앙공동체의 영원한 좌표가 됩니다. 

 

그런데 이 ‘나사렛 강령’이 현실에서는 외면 받고 조롱당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이 강령이 선언될 때 예민한 긴장관계가 생긴 정황을 보게 됩니다. 예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묻지요.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아니냐?” 이 물음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실려 있습니다. 가난한 집 출신이라고 얕잡아보는 마음과 예수의 힘 있는 선언에 대한 놀라움이 동시에 담겨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심경 이면에는 예수께서 말한 ‘나사렛 강령’과는 다른 기대를 가진 사람들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베푼 기적과 풍요를 자신들에게도 베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리고 기적이 넘쳐나던 위대한 예언자들의 시대에 있었던 두 개의 에피소드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기적이 베풀어지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자 회당에 모여 있던 경건한 무리들은 분노하여, 예수를 죽이려고 벼랑 끝으로 몰고 갑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의 진리가 기성체제 속에서는 불편한 것이요, 그 믿음을 따라 사는 신앙의 현실은 시련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경건한 신도들에게 ‘나사렛 강령’은 거의 잊힌 진리가 되었습니다. 원색적인 ‘번영의 복음’이 예수의 목소리를 대신했기 때문에 ‘나사렛 강령’은 이제 달갑지 않은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증오와 혐오의 대상을 발명하는 일에 능숙할 뿐, 예수의 정신인 포용과 사랑, 책임과 연대의 삶을 견디지 못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묶인 사람의 해방을 위해 싸우지 않고, 눈먼 사람이 보도록 일하지 않으며, 억눌린 사람의 자유를 위해 헌신하지 않는 교회에서 예수의 얼굴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스스로 부풀려졌을 뿐 복음의 능력은 잃었습니다. 예수 시대의 성전종교처럼 변했습니다. 

 

  

 

우리는 누가의 공동체가 어떻게 예수운동을 출발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회당 안에서 읽은 이사야서 본문에서 어떻게 예언정신을 되살리는지 관심합니다. 그것은 복음이 누구에게 전해져야 하는 지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읽음으로써 예언정신을 되살렸다는 말입니다. 

 

누가복음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히브리어 ‘아나윔’을 헬라어 ‘프토코스’(πτωχός)로 고쳐서 읽습니다. 프토코스는 비참한 가난(wretched poor)에 처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바로 이들의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전하는 말이 복음이 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나사렛 강령이 지시하는 복음의 근본 기준입니다. 

 

지난 부활주일에 성찬식을 가지면서 향린공동체에 속한 교회는 다음과 같은 ‘결단의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 세상을 섬김으로써, 우리의 사귐 속에서, 가난한 이웃 속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예수의 나사렛 강령에 충실하고자 하는 우리 공동체의 다짐입니다.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의 교회 역시, 활동의 기준은 나사렛 강령에 있습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이웃이 될 때 교회의 복음 선교는 참될 수 있습니다. 나사렛 강령은 예수운동의 원리입니다. 

 

오늘 향린공동체가 길 위에서 예배드리는 이 경험은 우리의 믿음이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 지를 되새기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자기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을 다짐하는 이 예배를 통해서, “오늘 이 말씀이 너희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선언하는 예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당신을 벼랑 끝에서 떨어뜨리려고 했던 사람들 한 가운데를 지나가셨던 것처럼, 물신에 사로잡힌 이 시대의 죄악의 질서 한 가운데를 말끔히 뚫고 지나가는 향린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사렛강령에 기초한 믿음을 통해서 예수 부활의 시대를 증언하며, 함께 공동체를 이뤄 사회적 영성을 높여가려는 우리들의 노력에 성령께서 지혜와 힘을 더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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