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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서로 격려합시다 | 김희헌 | 2018-11-18

by 김희헌 posted Nov 19, 2018 Views 255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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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8-11-18

서로 격려합시다 (삼상 1:4-20, 10:11-14, 19-25, 13:1-8)

2018.11.18 (창조절 12, 장로/권사임직식)

 

오늘 우리 교회는 두 분의 장로와 여섯 분의 권사를 세우는 예식을 갖게 됩니다. 임직하는 분들의 헌신을 통해서 교회가 새롭게 되는 계기를 맞기를 바라며, 또 임직하는 분들만이 아니라 교우들 모두가 서로 격려하며 공동체를 세워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금년을 지나오면서 우리 교회에 아픈 상처가 생겼습니다. 각자의 열망이 크다보니 서로간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고, 그로 인해 갈등도 깊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 다른 모양으로 고통의 기억을 갖고 있는데, 쓰라림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원망하기보다 자기 안에 깃든 사랑의 용기를 더욱 크게 키워가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서로에 대한 격려가 필요합니다.

향린교회에 오래 다닌 분들이든 이제 정을 붙이고 있는 분들이든 교회에 대한 바람과 긍지가 큽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가 여느 교회와는 다른 길을 걸어온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향린교회는 지난 성장주의 시대에 교회 자체의 성장을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교회개혁과 사회선교를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그것은 교리와 교권에 대한 단순한 반대라기보다는 교회 본연의 모습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이 몸부림은 굳어진 종교정신에 대항하는 단순한 자유주의적 반응이라기보다는, 예수의 정신을 이으려는 신앙공동체의 간절한 염원의 발로였습니다. 향린교회에 긍지가 있다면 바로 그러한 염원의 진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염원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신앙공동체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권위주의 정권이 억압적 정치를 펼치던 지난 시절에 향린교회는 쉬운 길을 걸어왔는지도 모릅니다. 표방된 정치적 진보성이 교회의 얼굴이 되어 존경과 흠모를 받았기 때문입니다우리 교회가 앞으로도 선명한 사회 선교적 입장을 갖고 억압당하는 약자들의 곁을 지키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저 또한 애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가 다가오는 시대를 향해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교우 여러분과 함께 확인하고 싶습니다. 지난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고, 또 금년부터 남북 화해의 물결이 거대하게 일어나면서 사회가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만큼, 우리 교회 역시 이 전환의 시기에 능동적 대처를 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 30년 동안 저항의 시대를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창조의 시대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창조는 외부적 도입이 아니라 내부적 변화에서 비롯됩니다. 함께 지혜를 모아 새로움을 실험하고 변화를 향해 모험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오늘의 임직식이 바로 이런 전환의 시대로 가는 출발이 되기를 바라며, 성경의 가르침을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새 역사를 여는 사람, 사무엘상 14-20]

본격적인 역사서인 사무엘서는 약속의 사람이 탄생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사무엘이라는 약속의 사람이 태어남으로써 절망의 시대가 걷히고 새 시대가 열립니다. 사무엘이 태어나기 전 사회는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했던 사람들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이룬 부족공동체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초창기의 활력을 잃고 점차 침몰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사사기>의 마지막 묘사는 이렇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21:25) 평등주의적 이상을 잃고 왕정제도의 일사불란한 체제를 원하게 되었다는 것도 안타깝지만, 공동체적 목표를 잃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뿔뿔이 살아간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였습니다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사무엘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상징이 됩니다. 그런데 새로운 시대는 찬란한 보금자리에서 태동하지 않고, 불모의 삶을 살아가던 비참한 여인 한나의 결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부류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들을 살펴보면서, 어떤 삶을 살았던 사람에 의해서 새 시대가 열렸는지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엘가나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매년 성소에 가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정에서는 공평하고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습니다. 특히 당시 가부장시대에는 결격사유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아내 한나를 변함없이 신뢰하고 위로하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구시대에 속한 생활의 반복일 뿐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 3입니다. 엘가나의 경건한 삶은 엘리의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 있는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사무엘서 2장과 4장은 옛 시대의 종말에 대한 상징으로 이 두 아들의 탐욕과 죽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타깝게도 엘가나의 성실과 정성은 새 시대를 여는 일이 아니라 옛 시대를 연장하는 데 바쳐졌다고 하겠습니다이점에서는 그의 아내 브닌나의 경우가 더 분명합니다. 그녀는 적수를 괴롭히고 업신여기면서 자기 삶을 향유할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그저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는관성의 법칙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제사장 엘리입니다. 그는 보는 대로 행동하는사람입니다.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고 처음엔 술에 취한 줄로 오해했지만, 그녀의 해명을 듣고 오해를 풀고 축복을 베풉니다. 편견 없는 그의 행동이 사무엘의 탄생을 도왔으니, 시대의 전환기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 엘리 역시 옛 시대에 속했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안내해주었지만 자신이 시대의 안내자가 되지는 못했고, 아들의 전사 소식과 함께 자신도 죽음을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새 역사의 주역은 한나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과 같은 고통스런 현실의 비참을 스스로 깨뜨리고 일어난 사람입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아들을 하나님에게 바치겠다고 서약하고 마침내 얻게 됩니다. 자식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실인(6:2)으로 바치겠다는 그녀의 약속은 오늘날의 문화적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감각으로 본다면 아들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요, 가장 좋은 것을 가장 거룩한 일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다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한나의 약속과 다짐에서 새 역사가 펼쳐집니다.

2장에 나오는 <한나의 노래>는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가, 1:46-55>와 함께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해방의 노래인데, 그 내용은 매우 진취적이고 전복적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 그녀는 하나님께 아들을 구하여’(shaal, ask) 얻었다 하여 그 이름을 쉐무엘’(shemuel)로 지었는데,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는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간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시대를 대하는 두 가지 방식, 마가복음 131-8]

마가복음 13장은 복음서의 묵시록으로 불리는 장으로서, 시대의 종말에 대한 암시와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시대의 종말이란 파멸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라 하겠는데, 이 전환의 시대를 대하는 두 가지 다른 모습을 예수와 제자들의 대화에서 보게 됩니다. 이들은 성전을 나오면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제자들은 성전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1) 이것은 뒤에 이어지는 예수의 말씀과 비교해 볼 때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2)

이들은 같은 성전을 보면서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위용에 눌려 실제로 일어날 재난의 시대를 보지 못한 반면, 예수님은 거룩하고 장엄한 모습 뒤에 감추어진 재난과 속임수를 언급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자처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전쟁과 재해가 일어나 삶이 파괴될 것을 말하면서, 그것을 성전의 무너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견의 형태를 띤 마가복음의 이 기록은 유대전쟁(66-73)으로 인해 폐허가 된 시대를 추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런 재앙이 아직 끝은 아니, ‘진통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어질 진통의 시대를 살아갈 방도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본문이 여기서 끝나 궁금증을 남기고 있는데, 그것이 어쩌면 예수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절실한 물음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회당에서 매를 맞고 재판에 넘겨져 증언을 해야 하는 때라고 할지라도 추구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온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이고 (10),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서 성령이 우리를 통해 말하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11) 이 두 가지가 예수운동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예수운동은 성전에 안주하는 종교 활동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성령과 동행하며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펼쳐가는 끈질긴 운동입니다.

그렇게 예수운동을 생생하게 이어간 사람들로 인해 오늘날까지 교회가 생존하고 있는데, 그 운동이 때로는 지치고 힘들기 때문에, 제자들처럼 건물 자체를 거룩하다 하면서 그 안에 안주하거나, 또는 운동의 활력을 사제들에게 위임해버리고 결국에는 종교 조직으로 굳어지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죽어버린 교회의 모습이라면, 살아있는 교회는 어떻게 예수운동을 지속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우리의 관심도 그것입니다.

 

[예수운동을 가능케 하는 동력, 히브리서 1011-14, 19-25]

히브리서 10장의 본문은 죽은 종교와 산 종교, 종교의 두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제사장의 희생제사로 연명하는 종교, 다른 하나는 예수를 힘입어 담대하게 새로운 삶의 길을 걷는 종교입니다석 장(8-10)에 걸쳐서 히브리서가 계속 강조한 점은 제사장들의 희생 제사로는 죄를 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씻는 길은 예수를 힘입어 새로운 살 길’(20)을 걷는 것입니다. 새 길을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서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22-23이 말해줍니다. 그것은 굳센 믿음과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고 흔들리지 않고 소망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하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공동체의 활동에 관한 것으로서 24-25절의 권고입니다.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고, 습관대로 모이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주의 날을 바라보며 힘써 모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운동을 가능케 하는 두 가지 동력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새로운 미래는 바로 그것으로 열립니다.

 

죽은 종교를 반복하기보다 생생한 예수운동을 전개하며 새로운 삶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고, 오늘 임직식을 통해서 새 삶의 길을 열어갈 교회의 일꾼을 세우고, 이들과 함께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를 이루어가기를 기원합니다. 잠시 침묵한 후 임직식을 진행하겠습니다.

 

[파송사]

우리는 오늘 두 분의 장로와 여섯 분의 권사를 세웠습니다. 이 일은 성경의 가르침과 향린의 정신을 따른 것으로서, 예수운동을 이어가며 교회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우리 공동체의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사랑과 선한 일을 위한 서로의 격려가 넘치는 교회를 다시 세우며, 새로운 삶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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