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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평화의 소식 | 김희헌 | 2018-12-25

by 김희헌 posted Dec 26, 2018 Views 182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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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8-12-25

평화의 소식 (사 52:7-10, 히 1:1-4, 요 1:1-14)

2018.12.25 (성탄절)

 

성탄절 아침,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류가 얻은 큰 가르침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은 낮은 곳에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들판의 가난한 목자들에게 그리스도 탄생소식이 전해졌다는 이야기, 아기를 누일 곳이 없어서 짐승의 여물통을 사용했다는 이야기, 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모두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는 메시아에 관한 이야기치고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통해서 얻게 될 구원과 평화의 특징을 말해줍니다. 예수의 구원은 낮은 곳에 있으며, 예수의 평화는 낮아짐으로써 얻게 됩니다. 예수를 따른 신앙공동체는 생명의 길을 낮은 곳에서 찾았습니다. ‘낮아지는 것’은 ‘마음의 마술’이 아닙니다. 낮아지는 것은 고통당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의 곁에 함께 있는 삶입니다. 

 

[본문의 내용]

오늘 성경본문 이사야 52장은 오랫동안 성탄절 아침에 교회가 읽었던 글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자기 땅에서 쫓겨나 유배당한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전합니다. 포로가 되어 살아가던 그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포로생활은 절망과 무기력, 좌절과 슬픔, 패배와 분노가 일상이 된 삶이었습니다. 고통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평화를 꿈꾸는 것마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때 예언자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냅니다.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 하고 외칩니다. 그 발걸음이 도착하여 전한 소식은 “평화가 왔다!” “구원이 이르렀다!” “너의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선언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 신처럼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우상들이 더 이상 지배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성탄절에 이 본문을 읽었던 교회는 ‘평화가 왔다’ ‘구원이 이르렀다’는 이사야의 말과 ‘그리스도가 탄생했다’는 복음서의 진술을 같은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과 권력이 지배하는 질서, 악한 사람들이 선한 사람을 조롱하고,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죄악의 질서가 무너지고, 고통당하던 사람들이 평화와 구원을 얻는 곳, 바로 그곳이 그리스도가 탄생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희망은 쉽게 태어나지 않지만, 태어난 희망은 쉽게 죽지 않습니다. “너의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이사야의 말씀은 희망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변덕스런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구원과 평화의 소식이었습니다. 그 평화의 소식으로 희망이 솟아난 곳이 그리스도가 태어난 자리입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이 전해주는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는 알쏭달쏭합니다. 그리스도를 가리켜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요,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본문의 비밀을 풀어준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안병무 선생님입니다. 요한복음이 증언하는 성탄의 비밀을 푸는 열쇄는 1절과 14절을 함께 읽는 것입니다.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말하고, 14절은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고 말합니다. 당시의 철학은 ‘말씀’(로고스)과 ‘육신’(싸르크스)을 구분해서, ‘말씀’은 고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육신’은 천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비천한 존재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자리가 ‘싸르크스’라고 하는 낮고 천한 자리에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매우 혁명적인 이해입니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를 세상의 창조와 연관지어 설명합니다. 창세기의 맨 처음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시작되는데, 창세기의 첫 번째 히브리어 단어(베레쉬트)가 요한복음에서는 헬라어(엔 아르케)로 번역되어서 동일하게 시작합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이 존재함으로써 모든 것이 생겨났고, 그 말씀 안에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그 빛이 비치니 어둠이 물러갔다.’ 이것은 어떤 사실에 대한 설명이나 어떤 사건에 대한 진술이라기보다는 진리에 대한 시적인 표현, 어떤 깨달음에 관한 상징적인 표현처럼 보입니다. 시는 간결하지만 풍요로운 의미를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어둠이 물러간 삶, 그것은 새로운 탄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맘에 모시면, 그 말씀이 생명의 참 빛을 낳고, 그 빛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됩니다. 그것이 요한이 말하는 성탄의 체험입니다. 성탄이란 ‘아기탄생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 마느냐 하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서 태어난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탄의 참된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사건’에서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한복음 본문에서 세 가지로 상징됩니다. 말씀이요, 생명이요, 빛입니다. 사람들은 ‘말씀과 생명과 빛’을 경험하면서도, 놀랍게도 그것을 맞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삶에 성탄의 경험은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을 맞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삶에는 그리스도가 탄생합니다. 

성탄의 시간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구경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그것은 생명에 속한 길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시간이요,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비추는 시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은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깨달음과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독생자를 모시고, 그분의 은총과 진리가 나를 지어가도록 내맡기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소유할 때, 우리 삶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은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히브리서의 본문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 믿음의 비밀을 말합니다. 1장 2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을 지어가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피조물은 오늘도 고통당하며, 인류는 가난과 분쟁, 탐욕과 파괴, 대립과 갈등의 현실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생명의 상처를 싸매주고, 흘린 눈물을 닦아주며, 평화를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가 세상을 새롭게 지어가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증언하는 그리스도는 낮은 곳으로 오는 평화이며, 우리로 하여금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낮은 곳을 향하도록 이끄시는 진리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는 은총이 있습니다. 그것은 낮은 곳에서 경험합니다. 

스스로 낮아지며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힘없는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의 곁을 항상 지키며,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예수는 이 역사 속에서 계속 탄생합니다. 척박한 이 땅에 평화의 소식을 전하면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사람들, 하늘의 말씀을 이 땅의 육신으로 피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이 세계는 우상들의 세계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세계가 되어 새롭게 지어집니다. 

교회의 안과 밖에서 그 일을 해나가는 모든 사람들 위에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침묵하겠습니다. 

 

[파송사]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산을 넘어 달려가는 발이 됩시다. 평화의 사람으로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립시다. 생명의 길은 낮은 곳에 있습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 그리스도가 주시는 구원을 얻고, 어두운 역사를 뚫고 태어나는 아기 예수의 평화를 맞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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