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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구하고 찾고 두드려라? | 조은화 | 2019-07-28

by 조은화 posted Aug 01, 2019 Views 24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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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9-07-28

“구하라 찾으라 두드려라?”

(호세아 1:2-10; 골로새서 2: 6-19; 누가복음 11: 1-13)

 

 

‘모래요정 바람돌이’ 주제가를 아시는지요? 제가 어릴 때 즐겨봤고, 지금까지 주제가가 생생히 기억나는 만화입니다. “일어나요 바람돌이 우리의 요정 이리와서 들어봐요 우리의 요정. 우주선을 태워줘요 공주도 되고 싶어요 어서빨리 들어줘요 우리의 소원. 예들아~ 잠깐! 소원은 하나씩 하루에 한 가지 바람돌이 선물~”

이렇게 이어지는 노래입니다. 이 만화 원작은 영국에 어느 한 시골에 사는 4명의 어린이들이 모래요정 바람돌이와 모험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 만화라 그런지 성감수성이 떨어지는 가사 내용이 있긴 하나, 이 만화에는 어린이들이 허황된 탐욕의 세계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욕구충족의 한계를 정해주는 장치로, 그날 이루어진 하나의 소원은 해가지면, 같이 사라지는 일장춘몽과도 같은 소원체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부자가 되든, 왕이 되든 사랑을 하든 말이지요. 그래서 하루를 마감하는 때,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진 만화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사실 매순간 알게 모르게 무엇을 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구함 앞에 물음을 가져 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왜 구할까? 우리가 구하는 것은 정말 적합한 것인가?

 

눈을 뜨면 보이는 이야기 하나 전합니다.

 

어느 날 목욕탕에 간다던 여동생이 실종되었습니다.

연락도 없고, 좀처럼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서 온 가족이 애를 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동생이 돌아왔습니다. 아이를 두 명이나 데리고 말이죠.

온 가족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떤 남자가 자신을 납치하여 그날 밤 성폭행을 저질렀고, 이미 버린 몸이라는 생각에 집에 돌아올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그저 이렇게 살아야 되나 체념한 상태로 그 남자 집에서 살게 되었답니다. 그 남자의 어머니를 돌봐야 했으며 지금껏 해보지 않은 집안일과 농사일 게다가 밤이면 그 남자의 욕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일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아이를 둘이나 낳게 되었다고...

친정집에 오고 싶어도 어디가 어디인지 도통 분간할 수 없는 곳이라 찾아올 수도 없었고 친정집에 가고 싶다고 아무리 부탁을 해봐도 그 남자는 들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살아 돌아와 준 것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안심을 하고 있는데

아 글쎄.. 이 남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저희 집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이런 기가 막힌 스토킹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여동생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놓고 또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나다니요.

 

이 내용은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선녀의 가족 입장에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관점의 바꿔 생각하면 아름다운 동화가 때론 폭력과 고통의 사건일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어서 물음을 가져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과연 우리를 구원하는 것인가? 공동체를 살리는가? 파괴하는가?

 

[전환의 힘이 필요한 이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제1성서의 본문 호세아서는 여로보암 2세 말기인 기원전 750년에서부터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멸망하기 직전까지 30여년의 국내 정치상황을 반영합니다. 이스라엘 말년은 강대국과의 외교정책의 혼선 속에 네 차례의 쿠테타로 정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국왕 암살 사건, 왕실 음모, 무분별한 정치 동맹, 시리아와 에브라임 전쟁, 앗시리아의 침략 등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 아래서, 호세아서는 북이스라엘을 향해 비판의 소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서 서두를 보면서 불편함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은유로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 예언자 호세아가 남편이 되어 문란한 여성 고멜을 만나, 부정한 자녀 셋을 낳아 그들을 버림받은 존재로 그리는 것을 시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계약을 깨뜨린 이스라엘에 대한 야웨의 정당한 형벌묘사 비유가, 다름 아닌 아내에게 신체적 폭력을 가하겠다는 위협으로 나옵니다. 호세아서에는 아내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3단계 전략을 구사하는데, 바람피운 연인과 떨어뜨려 놓기, 밥 안주고 굶기기, 들에 내보내 진짜 남편이 누구인지 깨닫게 하기 입니다. 이런 전개는 부계중심 문화에서 여성의 성을 통제하는 사회적 방안들이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호세아서는 본뜻은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한 강렬한 애뜻함을 전하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종교적인 이미지로 심오한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칫 성서의 글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신체적 학대를 포함한 폭력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수 있기에 우리는 성서를 대해 다음과 같은 물음을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은유가 적절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은유가 대변하는 것은 누구의 경험이며, 배제하는 것은 누구의 경험인가?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누구의 경험이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누구의 경험인가?

 

성서는 시대적으로 가부장의 부계중심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감안하여, 비판적 성찰을 통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눈으로 오늘의 호세아 메시지를 봅니다.

앞서 말했듯이 국내외의 혼란과 정치적 경제적 상황 속에서 민중을 살펴야 할 지도층이 자신의 안일을 위해 나라의 주권을 팔아먹으면서 벌이는 타락과 무능, 부정한 행위를 고발합니다.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한 물품을 확보하고자 무리한 토지 확장 등의 결과 농민 다수의 기본생존권이 유린되는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호세아는 권력자들이 표방하는 방식이란 사실 가나안의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바알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꼬집어 말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하루속히 탐욕의 방식을 벗어나 변화의 길을 가야함을 제시합니다. 이는 단순히 풍요와 맞서는 게 아니라, 풍요를 누리기 위해 약자위에 군림하여 벌이는 추잡하고 가학적인 착취 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진정한 관심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있음을 전합니다. 나라의 심판은 지도층의 잘못 때문에 발생했지만 그 결과 고통을 당하는 다수 농민 민중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연민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려라]

 

오늘 누가복음 본문에서도 주님의 거룩한 연민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그간 익숙하게 들어왔던 성서의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구하라, 찾아라, 두드리라. 이 말씀에 앞서 전개되고 있는 이야기는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요청과 거기에 대해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기도입니다. 황성규 목사님께서 쓰신 「주기도문 해설」을 참고하여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가복음서 본문 3절은 필요한 양식을 ‘날마다’로 표기합니다. 그렇다면 양식을 날마다 달라고 기도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오늘 가장 필요한 밥을 달라고 구체적인 오늘이 주어지기를 간구하는 이들, 바로 허기에 지쳐 힘들고 배고픈 이들입니다. 하루 살 수 있는 생존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기도인 만큼 그 이상의 탐욕을 휘한 기도는 불필요합니다. 그 하루를 살기를 희망하는 기도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반면 양식이 차고 넘쳐 풍족한 이들은 이 기도를 드리며, ‘내가 먹는 밥이 다른 사람들의 밥을 훔친 것은 아닌지, 자신이 속해 이는 사회제도가 모든 사람이 밥을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사회제도인지’를 물음을 가집니다. 나의 소원 속에 우리의 소원을 포함시키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나에게가 아니라 우리에게 날마다 주시기를 기원하는 이유입니다.

 

4절에서 누가본문은 우리가 용서받는 ‘죄’와, 우리가 용서하는 ‘죄’의 단어 사용을 달리하여 주의 기도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죄는 ‘오페일론티’라는 단어로, 빚을 진 것을 용서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권력자를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금전적으로 물질적으로 빚진 사람들에게 빚을 면제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받는 죄는 ‘하마르티아’, 즉 ‘과녁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다른 대상을 향해 가는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4절 마지막에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청원으로, 우리의 공동체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가는 중, 혹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시험, 유혹) 지켜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은 공동체의 선을 향해 고민하며 찾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으시는, 오히려 그런 구함을 찾아 나서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생명으로 살 수 있도록 당신 능력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까?

 

[새로운 것과의 만남-평등과 화합]

 

골로새서는 골로새교회를 바울이 세우지도 방문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 바울의 이름으로 서신을 쓰고 있는데, 그 저자층은 골로새 공동체가 처한 새로운 시대와 상황에 맞게 바울의 가르침을 해석하려고 애썼습니다. 골로새 교회공동체는 유대 신비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영향권 아래서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 즉, 골로새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기존의 종교의식들 음식법과 정결법을 등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는 것, 과거 관습으로 공동체를 잡아 매이게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골로새서는 이 문제에 맞서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골로새 공동체 그리스도인들이 그토록 걱정하는 우주적 세력을 꺾었으므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 그들은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승리했다! 이 승리는 구체적으로 금욕수행, 절기준수 천사숭배 같은 의식의 폐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한 단계 나아가 그리스도인에 대한 요청이 이어집니다. ‘세례는 영적 의미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미도 갖고 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받을 때 옷을 벗은 후 물에 들어갔다가 새 옷을 입었듯, 골로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새로운 삶과 정체성에 걸맞는 행실을 옷 입으라.’ 그리하여 골로새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새로운 상태, 즉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선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혹여 이전의 습관으로 공동체를 과거에 묶어 놓으려 하는가? 과거를 사는가? 현재를 사는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페미니즘의 대중화!]

 

유튜브에서 우연치 않게 들은 커버음악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가수들이 줄줄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노래인가 알아보니, 디즈니 실사영화 ‘알라딘’의 OST로 나온 ‘Speechless’, 즉 침묵이라는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 한 곡은 저를 극장으로 가서 알라딘을 보도록 이끌었는데요, 영화 중 자스민 공주가 탄압받는 극한의 시점에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며 부르는 이 노래는 200번 넘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Speechless’를 소리내어 들려드리고 싶지만, 번역된 가사로 대신합니다.

 

“난 침묵하지 않을 거야. 넌 날 조용히 시킬 수 없어 그러려고 시도해도 난 떨지 않을 거야. 내가 아는 전부는 내가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거니까.

난 숨을 쉴 거니까 그들이 날 질식시키려 할 때 말이야 날 과소평가하지마

바꿀 수 없는 수 백 년이 되고 꺾이지 않는 모든 규칙과 단어들

‘네 자리에 있어라’ ‘목소리를 내지 마라’

하지만 이제 그 스토리는 끝났어. 왜냐하면 난 무너질 수 없으니까

자, 어서 이리와서 해봐 날 막아보고 날 쓰러뜨리려 해봐

이 새장 안에 날 가두려 해봐 난 쓰러져서 죽어가지 않을거야.

난 이 부서진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나를 지켜볼 거야...

내가 아는 전부는 내가 앞으로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거”

 

이 영화는 자스민 공주를 알라딘의 연인으로 설정하고, 이야기 체계상 어느 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아쉬움과 한계를 갖고 있지만, 자스민 공주 역의 변화는 최근 디즈니의 근래 실사 리메이크가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지 확실하게 드러낸 경우라 하겠습니다.

1992년작 에니메이션에서 자스민 공주는 꽤나 파격적인 공주 역할이었습니다. 궁궐 밖을 나오고 싶어하고 활기차고 발랄한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나 2019년 나오미 스콧이 연기한 실사판에서는 자스민 캐릭터에 더 비중을 두어 ‘왕비’가 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주체’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사회적 억압 시스템에 대항하여 침묵을 깨면서 ‘지도자’가 되는 데까지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번 디즈니에서 만든 알라딘은 ‘자스민’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위치나 설정이 이 작품을 살렸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자본이, 이제는 새로이 변화하는 페미니즘의 물결을 무시할 수 없게 됐음을 실감했습니다. 물론 페미니즘의 힘을 상업화에 이용하여 돈을 버는 자본의 힘에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페미니즘 물결은 영화에 해석하여 녹여내지 않으면 안될 만큼 변화의 힘이 커졌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향은 알라딘 영화속 캐릭터들을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지위나 겉모습이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증폭시켰고, 그리하여 인간은 다양하고 각자가 해방의 주체라는 것을 드러내어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페미니즘을 본다: 하나님 나라 찾기 새 운동]

 

이렇게 페미니즘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문화와 종교 안에 들어와 겪는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일과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우리 욕망의 메커니즘이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가? 그간의 긴한 역사를 볼 때, 가부장제도 안에서 남성적 욕망의 메커니즘은 취하고 소유하고 빼앗고 채우고 부풀리는 것을 주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적 욕망의 메카니즘이 자리 잡으면서 관계를 맺고 책임을 지고 주고 배려하는 힘이 발현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물결은 우리가 세상을 놓치고 있었던 것을 보도록 합니다. 누가 소외되었는지, 힘으로 누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세밀하게 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 아동학대는 단순히 교사개인의 양심문제로만 치부할 일일까? 어떤 점에서는 사회가 돌봄이라는 소중한 영역을 값싼 노동으로 치부한 결과가 아닐까요? 폭력에 대해 처벌강화만 할 것이 아니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교사들이 어떤 고통을 감내하며 살고 있는지 보아야 할지 않을까요? 변화 속에 세상은 진보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우리의 자리를 다시 보게 합니다. 살려야 할 것을 더 찾게 하고 만지게 합니다.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린다는 것은? 타인이 원하는 것을 반성적 성찰 없이 그저 나도 원한다고 생각하기에, 우리 주의에는 욕망의 쟁투가 벌어지는 것은 아닌가요? 식어가는 연대감을 다시 살리고 공동의 선을 마련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나도 원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일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우리 곳곳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일들을 만납니다. 지난주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416광장 연속기도회가 향린주관으로 있었고, 평통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실현을 외치며 7.27 평화홀씨마당과 미 대사관 둘레 평화행진이 있었습니다. 지난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김용희 님을 위한 매일 기도회를 각 신도회에서 돌아가며 드리고 있습니다.

 

강남역 사거리 교통 폐쇄회로 CCTV 철탑에서 49일째 고공농성을 하는 김용희님은 오늘로 단식 56일째를 맞고 계십니다. 건강하게 내려오시기를. 삼성이 사죄하고 반성하기를,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는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저녁 기도회 마칠 즈음 전화통화로 들려오는 철탑 위 김용희님의 목소리, 그리고 자신이 잘 있음을, 함께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흔들어주시는 핸드폰의 불빛을 볼 때마다, 진하게 저며 오는 힘을 느낍니다. 오늘 'Speechless'의 가사처럼 '이 부서진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힘'이 느껴집니다. 그 속에서 강하게 구하고 찾고 두드림을 봅니다. 그 구함과 두드림은 세월호 광장 예은 엄마 박은희 님의 증언에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증언을 같이 나눕니다.

“증오와 혐오 그리고 날선 대립이 나라 안팎으로 횡횡하는 요즘 그래도 우리가 서로에게 이념이나 권세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라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간 이들이 내준 숙제를 풀어가고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세우는 일임을. 세월호 그 끝을 볼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아이들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실 거라는 믿음, 애쓰는 우리를 향해 그분이 품으실 사랑, 결국 이 일은 이뤄질 것이라는 소망을 여기모인 우리들 그리고 먼저 길을 만든 이들에게 계속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분리된 너와 내가 아니라, 함께 하는 너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려 가보는 일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일의 시작이 아닐까요?

 

우리는 정말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말씀을 기억하며 마칩니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보냄의 말>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고난 받는 자녀들이 외치는 소리이기 때문에

그 기도 소리를 거절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애굽에서 외치는 노예들의 아우성 소리를

하나님께서는 거절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심을 믿으며 당신의 뜻을 쫒아

구하고 찾고 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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