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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오늘의 만나 | 김희헌 | 2020-09-20

by 김희헌 posted Sep 20, 2020 Views 20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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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9-20

오늘의 만나 (16:2-15, 1:21-30, 20:1-16)

2020.09.20. 창조절 세 번째 주일

 

[삶은 쉬워야 한다]

창조절의 가을 하늘이 맑습니다. 길어진 비대면 상황에서 생겨난 울적한 맘을 위로해 주는 듯합니다. 창조절의 묵상 주제는 창조세계의 비밀을 푸는 것보다는 삶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시대의 새로운 삶에 대한 가르침은 점점 뚜렷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삶을 단순하고 소박하게 가꾸는 것입니다.

얼마 전 주변 사람의 추천으로 TED 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Jon Jandai라는 태국의 한 농부의 강연인데, 그 내용을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강연의 제목은 “Life is easy. Why do we make it so hard?”입니다. 삶이란 쉬운 것인데, 왜 우리는 어렵게 만드는가? 이 물음에는 당연한 것으로 알고 걷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경험한 어린 시절의 삶은 모든 것이 쉽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TV가 들어와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당신은 가난하다. 도시로 가서 교육을 받고 성공해야 한다.’ 그도 고향을 떠나 방콕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7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삶은 점점 힘들고 복잡해졌을 뿐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학에서 배우는 많은 것들이 자신과 세상을 더욱 힘들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에서 시작한 새로운 삶도 방콕에서 경험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웃 농부들은 일 년 내내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다음 농사에 투자할 돈을 벌기 위해서 자신이 지은 곡식 가운데 좋은 것은 먹지 못하고 내다 팔면서도, 삶은 점점 더 빚에 쪼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가 깨달은 것은, 삶을 소박하고 단순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살 집을 짓기로 맘을 먹고,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흙집을 닮은 소박한 집을 지었습니다. 3개월 걸렸다고 말합니다. 쉽고 간단해서, 누구나 지을 수 있는 집이라고 말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도 3개월이면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다만, 빚을 갚는 데 30년이 걸리지요.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새도 며칠이면 둥지를 짓고, 쥐는 하루에 자기 굴을 파는데, 인간은 자기 집을 마련하는 데 30년 걸린다니 이상하지 않냐고.

그는 하루에 두 시간의 노동, 일 년에 2개월간 일해서 4톤의 쌀을 수확했습니다. 여섯 식구가 1년간 먹을 곡식은 반 톤이 채 못 되었기에, 나머지는 팔았습니다. 날마다 15분가량 밭에서 일하며 30여 가지의 채소를 재배했습니다. 식구들이 먹고 남은 것은 팔았습니다.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많았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했습니다.

한 번은 청바지를 사 입으려고 한 달간 저축했습니다. 그런데, 새 청바지를 입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여전히 똑같은 자신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싼 청바지 대신 자기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아플 때는 병원에 가기에 앞서,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몸이 아픈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삶을 돌아보고 잘못된 습관과 태도를 고치면 회복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삶은 쉽고 가벼운 것이며, 만일 어렵고 복잡하다면 그건 비정상이라고 말입니다. 집과 음식과 옷 등의 생필품은 모든 사람이 구하기 쉬워야 문명이라고. 만일 그것을 얻기 어렵다면, 그것을 문명적 삶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냐고 되묻습니다.

그는 지금 PunPun이라는 작은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미래로 가는 지혜의 길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었습니다. 수백만 명이 그의 강연을 듣고, ‘삶은 본래 쉬운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이끌립니다. 모두 농부가 되라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사는 방식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만나의 의미 / 출애굽기 162-15]

오늘 제1성서 본문의 이야기도 비슷한 질문을 던집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나오는 만나와 메추라기 이야기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베풀어진 축복에 관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찬찬히 읽어보면, ‘먹어야 할 양식이 무엇인지에 관한 성서의 질문이자 가르침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출애굽 공동체가 광야에서 한 달여 생활하는 동안, 고충이 겹치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향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집트 땅 고기 가마 곁에서 배불리 음식을 먹던 때에 차라리 주님의 손에 넘겨 죽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왜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다 굶어 죽게 만드느냐.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불평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먹을 것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이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그들이 나의 지시(torah)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하여 보겠다.음식을 비처럼내려주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요? 그리고, 비처럼 내린 음식을 앞두고 그날 먹을 만큼 거두는 시험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을까요?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날아와서 주변을 뒤덮었고,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해지다가 걷히고 나면 땅 위에 서리처럼 보이는 음식이 뒤덮였습니다. 신기한 광경을 본 사람들은 묻습니다. ‘이게 무엇이냐?모세가 그들에게 대답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입니다.”

출애굽기는 여기서 오늘날 아재 개그에 해당하는 말장난을 합니다. (. 왕이 걷다가 넘어지는 것을 두 글자로 줄이면? 킹콩) 광야에서 40년 동안 매일 먹게 될 음식의 이름을 두 글자로 줄이면, ‘만 후입니다. 여기서 만나라는 이름이 나왔는데, 그 뜻은 이게 무엇이냐?’(What is it?)입니다.

사십 년 동안 먹을 음식을 가리켜서 이게 무엇이냐고 불렀다면, 그것은 단지 시루떡이나 부침개같은 이름이라기보다는, 다른 차원의 문제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모세는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양식의 이름은 이게 무엇이냐입니다. 그렇다면, 광야의 사람들은 아침마다 이게 무엇이냐하고 물으면서 양식을 먹는 것이지요. 무엇이 생명의 양식인가를 계속 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 옛날처럼 오늘날에도 만나와 메추라기가 하늘에서 내린다면 어떨까요? 요즘 용어로 말한다면, ‘기본소득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부자들은 아마도 그것만 먹고 어떻게 살아?’ 불평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만일 그렇다면 삶이 얼마나 가벼울까?’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을 믿어주겠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는 다른 관심을 보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사건이 단지 하늘의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디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준 시험문제라고 이해했습니다. 시험의 내용은 그날 먹을 만큼 거두는 것입니다.

이 시험을 통과하려면, 양식이 얼마나 필요한지 분량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소유의 크기에 대한 절제만으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존재의 방식에 관한 계속되는 물음이 필요합니다. 광야에서 주어진 생명의 양식, ‘만나의 진정한 가르침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공정성의 감각 / 마태복음 201-16]

마태복음서의 본문은 이와 비슷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렇습니다. 포도원을 가진 사람이 일꾼을 찾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할 일을 찾고 있는 몇 사람을 한 데나리온의 일당을 주기로 하고 고용합니다. 그리고 세 시간 간격으로 장터(아고라)에 나가서 일감 없이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품삯을 약속하고, 자기 포도밭에서 일하게 합니다. 마지막에는 일을 마치기 한 시간 전에도 나가서 그렇게 했습니다.

해가 져 일을 마치고 품삯을 계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관리인을 시켜서, 늦게 온 사람부터 하루 일당을 나눠 주도록 했습니다. 일찍부터 일한 사람은 더 받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도 한 데나리온밖에 주어지지 않자 불만이 생겼습니다.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과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자신들을 왜 똑같이 대우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그들을 나무랍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너그러운 행동이 당신들 눈에는 거슬리냐고 물으면서 이야기는 마칩니다.

이 비유는 그 앞뒤를 감싸고 있는 예수의 선언과 결부시켜 해석됩니다. 그것은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된다는 순위역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포도원 일꾼의 비유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전통적인 해석은 겸손과 절제에 관한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먼저 일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욕심을 앞세울 때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민중신학은 이 비유를 급진적인 평등사상에 관한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산술적 평등을 넘어서는 절대적 평등에 관한 메시지로 이해한 것입니다. 둘 해석 다 예수 운동의 정신(고전 1:27-28)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공정성’(fairness)에 관한 우리 시대의 감각과는 어울리기 힘든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이 비유 속에서, 공정성에 관한 오늘날의 감각을 대변하는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입니다. 그는 잠시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면, 많이 일한 자신은 더 많이 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입니다. 그런데 왜 성서는 주인의 입을 통하여 그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성서 본문은 포도원 주인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성서가 우리를 주목하게 하는 것은 그 주인이 보여주는 공정성에 관한 특이한 감각입니다. 그는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임금을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정당하게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포도원 주인의 독특한 모습은, 농장에서 일꾼을 부리는 것보다 계속 광장에 나가서 일거리 없는 사람을 찾아서 일감을 주는 데서 보입니다. 그것은 가난한 노동자와 그의 가족을 고려한 은혜로운 행동입니다.

이 모습에 비춰보면, 새벽부터 일한 일꾼의 주장은 편협해 보입니다. 그는 성실했지만, 치명적인 결점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진 공정성의 관념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범위 안에서만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그 주장이 과연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결국, 공평과 정의에 관한 그의 주장은 관용과 배려의 세계를 위협하는 것으로 변하고 맙니다.

여기서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라는 말씀은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새벽부터 일한 사람의 성실함이 도리어 너그러운 세상의 방해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비유는 우리에게 필요한 공정성의 감각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메마른 주장이 아니라, 삶을 두텁게 보듬어내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 빌립보서 121-30]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기록한 옥중서신입니다. (1:13-14) 생사의 갈림길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죽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도록당부합니다.

29절에서 바울은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이 가져야 마음가짐에 대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어떻게 고난을 받는 삶을 특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신앙의 세계에서만 이해 가능한 독특한 세계관입니다.

고통의 경험 속에는 삶을 파괴하는 혼돈만이 아니라, 삶을 정화하는 신비가 교차합니다. 만일, 고통의 바닥에서 신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구원의 문이 열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 것은, 단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는 삶 또한 주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이 말은 오늘날에는 도전이 됩니다. 오늘의 문화는 오랫동안 고통 자체를 터부시하며, 자기중심적 행복추구의 목소리를 높여왔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믿음도 예외는 아닙니다. 만일, 바울의 고백을 진지하게 듣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무엇을 위한 믿음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한 문학평론가는, 좋은 시인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하부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말이 존중받는 사회적 풍토를 의미합니다. (김종철,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117) 정보 과잉 시대에 수많은 말이 오고 가지만, 사람들은 말에 담긴 진실을 믿지 못합니다. 말이 진실을 대변하지 못하다 보니, 더욱 많은 말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말의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삶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삶을 표현한 말이 복잡해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먼저 삶을 가다듬는 마음의 생태학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광야의 출애굽 공동체가 매일 아침에 물었던 물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가 양식으로 삼을 오늘의 만나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용기와 확신과 고요함을 줄 수 있는 오늘의 만나가 필요합니다.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아내는 이 시대의 민중들과 교우들의 삶에, 하늘의 만나가 내리는 창조절의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며, 새 삶을 기원합니다. 사랑은 두터워야 하고, 정의는 따뜻해야 하며, 삶은 쉬워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길을 잠시 멈추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읍시다. 새 삶을 향한 용기와 지혜가 우리를 채우는 창조절의 은혜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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