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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뜻펴기

두려움을 넘어서 | 유영재 | 2020-08-09

by 김희헌 posted Aug 09, 2020 Views 21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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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8-09

두려움을 넘어서 (창 37:1-4, 12-28, 롬 10:5-15, 마태 14:22-33)

(평화통일주일, 유영재 님,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평화통일 주일인 오늘의 하늘뜻펴기는 성서적, 신학적 깨우침보다는 주로 제가 평화통일 운동을 하면서 최근 가지게 되는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하는 이야기는 향린교회를 비롯한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이 신앙적, 신학적 결단에 기초하여 선도적으로 전개해온 평화통일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향린교회를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신학교를 함께 다닌 서울제일교회 정원진 목사님을 통해서입니다. 당시 향린교회 청년부 활동을 하던 정목사님으로부터 홍근수 목사님 청빙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후 향린교회에 부임하신 홍목사님의 권유로 1994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창립총회에 참석했고 1998년 평통사 활동을 시작으로 이후 평화통일연구소 활동을 함께 하면서 15년가량 홍목사님을 모시고 평화통일운동을 하는 복을 누렸습니다. 

 

향린교회의 창립정신이 흐려갈 무렵 홍목사님과 여러 교우의 진보적 신앙과 실천으로 분열의 아픔 속에서도 향린교회의 정체성이 다시 세워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향린교회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는 민족의 평화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향린교회가 민족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 와중에 세워지면서 민족구원과 교회갱신을 지향했다는 데로부터 오는 숙명 같은 것이 아닐까요. 

 

향린교회와 평통사의 인연도 홍목사님이 향린교회 담임목사로서 평통사 창립을 주도하면서 맺어졌죠. 평통사의 오늘이 있기까지 홍목사님과 향린교회의 관여와 협력은 매우 큰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항상 향린교회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목사님과 평통사가 주력해온 활동은 주한미군을 포함한 한미동맹 문제입니다. 한미동맹이 8.15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를 가장 큰 힘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한반도 분단의 주범이며,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와 군정을 실시하면서 통일된 자주독립정권을 수립하려는 민족의 노력을 좌절시키고 남한에 친미정권을 수립하여 사회주의 확산(소련의 남하) 저지에 성공합니다. 미국은 패권적 목적을 달성했고 남한은 냉전의 전초기지로 전락했습니다. 분단과 미 군정, 전쟁을 거치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던 진보세력은 궤멸하고 미국을 등에 업고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친미파가 되어 우리 사회의 주류 지배층으로 똬리를 틀게 됩니다. 

 

한미동맹의 법적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합의 의사록, 한미 소파는 한국을 주권국가로 보기 어렵게 만들 정도로 영토, 군사, 통일, 경제, 사법, 환경, 노동 등에 관한 주권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젊은이들의 생사 여탈권을 70년 동안이나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거머쥔 주한미군 사령관이 장악하고 있는 것은 전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치욕입니다. 

 

2018년 판문점선언, 평양선언,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보면서 우리는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시대가 열렸다고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회담 결렬은 우리를 심각한 충격과 좌절에 빠트렸습니다. 이로부터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교착되어 남북미 정상들의 약속이 거의 진척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북 인도주의 지원조차 미국의 반대에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민족의 운명이 한미동맹을 앞세운 미국 손안에 있음이 아프게 입증되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우리가 ‘한미동맹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동맹이 무엇입니까? 국방대학교가 펴낸 안보관계 용어집은 동맹을 “우적(友敵) 개념 입각한 전-평시 잠재적 전쟁 공동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전시와 평시를 막론하고 북을 적으로 상정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한미 간 전쟁 공동체입니다. 오늘 창세기 본문에서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해서 죽이기로 작당을 하는 것이 바로 동맹의 속성입니다. 한미동맹은 북한을 말살하기 위한 전략과 작전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전쟁연습을 수시로 벌이고 있습니다. 또한 이를 실행하기 위한 세계 최고 수준의 파괴력과 정밀타격능력을 갖춘 공격적 무기체계와 군 구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형제들이 자신들의 동생인 요셉을 죽여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고 음모를 꾸미는 것과 닮아있습니다.

 

한미동맹은 이른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미동맹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와 지역, 글로벌 이슈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밝혔습니다. 대북 방어 목적의 한미동맹을 미국의 패권적 요구에 따라 전 세계적 이슈에 대응하는, 지상과 해상, 공중은 물론 우주와 사이버 영역까지 대응하는 전 방위적 동맹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해 중국 포위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사드 한국 배치와 성능개량을 통해 주로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통합 MD 및 삼각 군사동맹 구축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이 대중국 전초기지가 되어 중국과 군사적 적대관계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망치는 일이지요. 

 

동맹이 보편적이거나 일반적인 것도 아닙니다. 동맹은 주로 미국 주도로 맺어져 있으며 미국의 전 세계적 패권 행사에 동원되는 일방적이고 종속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미동맹은 불평등할 뿐만 아니라, 북미 간, 남북 간 적대관계를 규정하고 분단과 정전체제를 고착화함으로써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입니다. 미국은 한국을 대중 전선의 첨병으로 내세워 동북아에서 신 냉전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평등하고 대북(대중국) 적대적인 한미동맹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본질적으로 자주와 평화, 통일은 불가능하며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도 더욱 위태로워집니다. 이것이 평통사가 한미동맹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엔안보리 제재와 미국의 독자제재가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이행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를 푸는 열쇠는 뭘까요? 그건 바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전 실무선에서 합의되었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깬 잠정합의안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영변 핵 시설 영구 폐기와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일부 해제’를 북미양국이 교환하는 것입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구체화한 하노이 잠정합의를 되살려 대북 제재가 해제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고 남북 철도와 도로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 하노이 잠정합의는 합의문이 이미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북미양국 정상이 마음만 먹으면 미국 대선 전이라도 바로 정상회담을 열어 서명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방안입니다. 북미양국에서도 3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 북미양국이 연락사무소 설치를 모색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을 법적, 제도적으로 이행하는 방안은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최초로 제안한 ‘민(民)의 한반도 평화협정 선언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언문은 평화협정의 기본원칙으로 남북미중 4자가 기왕의 당사국들의 합의를 존중하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완전한 비핵화를 동시적‧단계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체결되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반도 평화협정에 포함될 내용으로 한국전쟁의 종식, 북의 핵무기 폐기와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폐기, 평화협정의 발효와 함께 유엔사 해체, 외국군 단계적 철수 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NCCK 화해통일위원회 신승민 목사님은 지난 7월 25일, 평통사의 평화협정 행사인 평화홀씨대회 연대사를 통해 "국내와 해외의 약 70여 개의 종교, 시민사회단체가 사상 처음으로 공동의 평화협정(안)을 마련하게 되었다”면서 “이 과정에서 2008년 평통사가 발표한 평화협정안이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평통사의 평화협정안에 대하여 셀리그 해리슨 박사, 강만길, 이삼성 교수 등이 극찬한 바 있습니다. 이 평화협정안에 근거하여 평통사는 2008년부터 평화협정 실현운동을 적극 전개해왔습니다. 10여 년 만에 단체들 간의 입장차이를 뛰어넘어 평통사의 평화협정안을 기초로 여러 종교시민단체가 공동의 평화협정 선언문을 도출함으로써 대중적 평화협정 실현운동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큰 기쁨과 함께 자부심을 느낍니다.

 

NCCK 등은 "한국전쟁을 끝내고 휴전에서 평화로 나아가자!"는 목소리를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모아가는 국제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인 2020년부터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되는 2023년까지, 한반도 평화선언에 대한 전 세계 1억 명 서명과 각계의 지지 선언을 확산하여, 한국전쟁을 끝내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당국자들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민’이 주도적으로 나서자는 이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에는 한국의 30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개인 제안자, 그리고 국제 파트너 단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향린교회도 여기에 적극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이 동시적, 단계적으로 실현되면 우리는 막바로 통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에, 4.19 직후보다, 87년 6월 항쟁 직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통일의 바람이 불 것입니다. 우리의 통일은 안으로는 남북 합의에 의한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중립적인 통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밖으로는 적과 우군을 가르는 동맹을 넘어서 동북아의 집단안보, 즉 동북아 공동의 평화안보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한 우리 사회의 지형은 매우 척박합니다. 지난 6월 25일 발표한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한미동맹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90.2%,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85%나 됩니다. 심지어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41.6%에 달합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현실과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국민의식의 현저한 괴리, 이것이 우리의 딜레마입니다. 수십 년 동안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전력을 다해 싸웠지만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매달릴까요? 그 심리적 기저에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두려움의 바탕에는 역사적 트라우마들이 중첩되어있을 것이구요. 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한미동맹이 해체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전쟁이 날 것 같은 두려움, 세계 최강자인 미국이 빠지면 주변국이 위협할 것에 대한 두려움, 우리가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면 미국이 보복할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겠지요.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상황,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하겠지요. 

 

오늘 마태복음 본문에도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가 마치 무협지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제자들은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며 두려워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께서 “두려워하지 마라.”면서 제자들을 안심시킵니다. 이때 베드로가 나섭니다.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이 즉시 “오너라” 합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다가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집니다. 그래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구조 요청을 합니다. 성서는 예수님이 그를 붙잡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라고 쓰고 있지만, 정황상 핀잔을 주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이 짧은 12절의 이야기에 두려움에 대한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으로 알고 두려워하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걷다가 거센 바람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면 두려울 일이 없었을 텐데 제자들의 믿음이 거기에 못 미친 것이지요. 

 

우리 국민 대다수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똑같은 사례는 아니지만, 저 자신도 우리나라가 가진 힘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습니다. 일제의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이 소재, 부품, 장비 분야를 표적으로 경제보복을 하고 나섰을 때 저는 우리가 기술력과 경제력에서 뒤지기 때문에 손해를 더 보겠지만 일본에 굴복하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습니까? 더 손해를 본 쪽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 아니었습니까? 저 자신의 무지 또는 인식의 지체로 우리 힘이 약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더 손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지요.

 

물론 미국이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경제력과 군사력 등에서 이제 아무도 하찮게 다룰 수 없는 중견국의 국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대미 수출입 의존도도 과거에 비해 훨씬 낮아졌고요. 위의 통일연구원 통일의식조사에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의견과는 달리 방위비분담금 증액에 반대하는 의견이 96.5%나 되기도 합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국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안보와 경제일 것입니다.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재래식 전력은 (북한에 비해) 남한이 월등”하다고 밝혔습니다. 북이 핵무기를 믿고 남침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 얘기는 한미동맹이 없어도, 주한미군이 없어도 북의 남침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북한은 물론이고 주변국 위협으로부터도 우리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추고 있습니다. 한미동맹이 종료되고 주한미군이 모두 나간다 해도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경제적 보복, 즉 자본 철수, 무역보복,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 등도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기에는 각각의 한계가 있습니다. 설사 미국의 경제적 보복이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남북교류협력과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의 편익이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것에 비해 단기적이고 제한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 우리 스스로를 믿고 미국의 보복과 압력에 맞설 용기를 낸다면 난관은 있겠지만 극복할 길은 있다고 믿습니다. 

 

마태복음 본문의 후반은 파도에 시달리는 제자들을 예수님이 구해주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듯하다가 베드로의 돌발행동으로 급반전합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것을 보고 자신도 걸어보겠다고 용감하게 나선 것이지요. 베드로는 저 같은 소심한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무모하고 맹동적인 도전에 나선 겁니다. 그렇지요. 새로운 도전이 두렵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는 알 껍질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새 세상은 열리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보기에 무모한 도전이, 실패를 감수하는 용기가 소중한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세상을 바꾸기도 합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편애에만 감싸인 나머지 자기를 미워하는 형들을 찾아 100km가 넘는 먼 길을 나서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역사는 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의 기쁜 소식이 유대인들에게만 갇혀 있었다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복음은 세계로 퍼져 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배안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면 자기 믿음이 보잘 것 없었다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달 말에 소천하신 김낙중 선생님이 목숨을 걸고 임진강을 헤엄쳐 건널 때, 문익환 목사님이 사선을 넘어 방북할 때, 홍근수 목사님이 분단세력을 향해 마치 돌아오지 않는 화살처럼 직진으로 나아갈 때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민족통일에 대한 순결한 열망이, 분단 50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이, 오로지 평화와 통일, 진실과 정의에 대한 드높은 신념이 그분들에게 있었고, 그것이 두려움을 넘어서 사람들이 보기에 무모해 보이는 역사적 실천으로 나아가는 힘과 용기의 원천이 되지 않았을까요?

 

오늘 우리의 현실은 동맹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의 자주도, 평화도, 통일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더욱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지배하면서 온갖 굴욕과 수탈을 강요해온 한미동맹을 미래에도, 우리 후손들도 감수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말해야 하고, 누군가는 행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본문 말씀처럼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 앞을 가로막는 거센 바람처럼 세계 최강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동맹이 우리 앞에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습니다. 한편, 한미동맹은 우리 대부분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익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한미동맹의 불평등성이 더 심화되고 그 해악이 더욱 자심해져서 이를 그대로 두고서는 민족의 밝은 장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넘어서 우리나라는 우리 스스로 지키겠다고, 우리의 주권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그러니 불평등한 한미동맹을 이제 그만 끝내자고 용기를 내어 소리높이 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잃을 것은 미국의 부당한 지배와 간섭이요, 우리가 얻을 것은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세상입니다. 주권이 회복된 나라, 평화롭게 하나 된 겨레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로마서 말씀대로 이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여러분의 발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분단 75년의 아픔 속에 맞은 평화통일 염원 주일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넘어서 평화와 통일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창립된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민족구원과 교회갱신의 고유한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으로 우리의 마음을 씻고, 평화와 통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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