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나아갈까 | 김희헌 | 2020-01-05

by 김희헌 posted Jan 05, 2020 Views 19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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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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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아갈까 (60:1-6, 3:1-12, 2:1-12)

2020.01.05. 새해주일

 

새해 첫 주일 아침, 교우들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진급예식을 위해서 교회학교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니 기쁩니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기대를 갖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하게 됩니다. 유치원을 마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여섯 명의 친구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배우게 될까기대할 것입니다. 또 한 학년씩 진급하는 친구들은 저마다 새로운 계획을 품게 됩니다. 거기에는 나의 삶을 어떻게 가꿀까하는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어떻게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합니다.

이런 물음들은 제각각 다르지만,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까하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에베소서 본문 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διὰ, by/through the faith), 그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3:12)

이것은 편지로 쓴 사도 바울의 마음가짐입니다. 바울은 담대함과 확신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꾼 꿈을 나도 함께 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걸어간 길을 나도 걷겠다는 고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꿈과 그분의 길을 가리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비밀’(mystēriō tou Christou)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비밀을 털어놓으시던가요? 예수님을 닮고 싶어 하는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있나요?

바울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이런 비밀을 말해주셨다고 고백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번역상의 문제 : ‘유대 사람들이라는 단어는 원문에 없으니 빼고, ‘이방 사람들로 번역된 에쓰네’(ἔθνη)뭇 민족으로 표현하는 게 나음) ‘그리스도의 비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것은 뭇 민족들이 공동상속자가 되어서,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3:6)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비밀복음을 통해서 서로가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며, 공동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화해를 이루는 삶이요, 공동체를 이루는 삶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신 계획(9/11)이요, 바로 그런 삶에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8)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한 이 그리스도의 비밀이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들리시나요? 시시한가요? 천국행 티켓도 아니고, 성공에 대한 보장도 없는 애매한 말처럼 들리시나요? 긴 안목으로 보면, 역사는 그리스도의 비밀이 더 확연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던 야만적인 제도는 근절하고, 성별에 따라서 참정권을 제한하던 차별을 철폐하고, 귀족과 사제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을 해체하여 만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며,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없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계를 지어나가는 것, 이 모든 과정은 인류가 모두 하나님의 공동상속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눈앞의 현실은 그렇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생존을 위한 경쟁관계에서는 늘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앞서고, 종교마저도 대결을 부추기는 증오의 복음을 전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공동체적인 삶이 파괴된 곳에서는 자기만이 옳다는 힘의 논리획일성의 논리가 기승을 부립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힘의 논리로 인해 비참해진 세계를 치유하겠다고 나선 진보주의 정신 역시 힘의 복음을 신봉하는 비극에 있습니다. 뼈아픈 실패를 거치고 난 오늘날에는 비로소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주의 사상을 배우게 되었습니다만, 그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적으로 간주된 상대방을 철저히 파괴할수록 해방의 미래가 빨리 올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혔습니다.

역사의 발전을 낙관적으로 봤던 변증법적 철학이 그 한 예입니다. 이 사상에 따르면, ‘갈등과 투쟁을 통한 모순의 격화가 더 나은 세계를 건설(지양, aufhebung) 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런 일이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 대한 파괴가 보다 나은 미래를 약속하기보다는, 오히려 항구적인 상실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을 우리는 더 자주 경험합니다. 그래서 생태주의 신학자 존 캅은, ‘하나의 가치가 박멸되면 될수록 회복될 수 없는 위험이 더욱 높아질 뿐이라고 말합니다. (John B. Cobb, Jr., Process Theology as Political Theology, 105)

오늘날 우리는 갈등과 대결이 일상화된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분단 75년과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된 한반도의 역사와 현실이 그러합니다. 흑백논리와 진영논리에 입각한 힘겨루기와 편 가르기로 인해, 우리 사회는 이리저리 찢기는 경험을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의 복음에 사로잡혀서 자기주장을 마치 절대적인 선()’으로 여기는 집단뒤처진 정신의 피난처 노릇을 하다가 결국 사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힘의 복음>이 아니라 <화해의 복음>입니다.

 

기원전 6세기 말경에 이사야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예언자가 있습니다. ‘3이사야로 불리는 이 사람은 바벨론제국의 포로로 끌려갔다가 폐허가 된 고향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참혹한 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패배감을 떨치고 일어나서, 함께 어둠 속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커다란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하늘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읽은 이사야서 60장부터 62장은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준 구원의 노래입니다. 모두가 어둡다 하던 때에 이사야는 다른 징조를 봤습니다. 본문 2절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둠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민족들을 덮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너의 위에는 주님께서 아침 해처럼 떠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너의 위에 나타날 것이다.”

절망의 때에 그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둠 속에서도 역사를 새롭게 지어내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맘에 새겨진 예언(58:6-7, 61:1-2)몇 백 년 후 예수에게까지 이어진 해방의 사상이 됩니다

이사야의 마음에는,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고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은 낙심하지 않고 일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외형을 보면 피 흘리는 대결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역사의 겉모양은 어둠이지만, 이미 빛이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Your light has come! 1) 그래서 그는 절망의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Arise and shine!) 어둠 속에서 좌절하지 말고 빛을 비추자! 촛불을 들자! 외친 것입니다

모두가 어둔 밤이라고 느낄 때, ‘아니다 빛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과장치 하나 없이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약육강식의 시대에, 그 모든 어둠에도 불구하고 빛이 있음을 보고, 그 빛을 향해 나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를 찾아간 동방박사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둠의 땅에 새 시대가 펼쳐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어둔 밤에 빛나는 별을 보았고, 그 별빛을 통해서 다가오는 시대의 징조를 봤습니다. 이전의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별을 따라나섰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진리의 시대를 향해 나선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헤롯이 지배하는 영토에서도 그들은 빛을 따라 왔노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헤롯의 속임수도 그들을 해치지 못합니다

이사야와 동방박사는 어둠 속에서 빛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역사를 새롭게 하는 분의 손길을 느끼고, 그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까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일어나, 빛을 향해 나아가라

 

2020년은 여러 가지 역사의 매듭이 있는 해입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상흔의 70주년, 4.19혁명 민주정신의 60주년, 전태일의 노동해방의 꿈 50주년, 광주 민중들의 저항공동체 실험 40주년, 통일방안에 대한 남북 합의가 이뤄진 6.15선언 20주년. 이런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맞으면서, 새로운 분기점들이 지어지기를 바라며, 우리는 모두 새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새로운 사명이 우리 각자의 삶과 우리 신앙공동체의 마음을 뚫고 솟아오르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을 모으지 못하면 역량을 구성할 수 없고, 사명을 분별할 수도 없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움직이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앞에 떳떳하고 담대한 공동체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담대한 공동체는 극단적 열정을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중요성을 분별한 절제된 마음을 가진 신앙, 은총의 세계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신앙이 이끄는 공동체입니다그런 공동체가 오늘 에베소서 본문에서 바울이 말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예수 안에서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갖는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간직한 공동체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새로운 터전을 준비하며 광야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이유가 시험대에 오르는 위태로운 때가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공동체적인 결속력이 요청됩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결속이란 갖자고 해서 갖추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것을 함께 지어가는 기쁨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공동체적 감각이요, 구성원의 결속입니다. 단지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만으로는 이 시대를 견딜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서 동경(憧憬)할만한 무엇을 지어가야 합니다. 비판과 저항의 행위만으로는 이 시기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새 시대의 대안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성서적 비전을 공동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교회의 존재이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 시작은 작은 곳, 우리 공동체의 새싹이 자라는 곳입니다. 새로운 학년으로 진급하는 교회학교의 모든 친구들, 두터운 사랑의 교육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 또 하나님나라의 일꾼을 길러내는 교육공동체로 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침묵합시다.

 

[파송사]

바울은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바울의 이 고백이 올 한 해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떳떳하고 담대한 공동체를 이루어갑시다. 은총의 세계 앞에서 겸손한 믿음을 살아갑시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우리 모두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갖는공동체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