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의 깊은 강을 건널 수 있을까

by phobbi posted May 16, 2025 Views 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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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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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5. 16.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로 관심을 끄는 것은 어렵다. 과거를 재현해서 후손에게 들려주는 능력은 희귀한 재능이다. 86세대의 이야기를 Z세대에게 들려주는 건 특히 더 어렵다. 201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오프라인 세계에서 살며 온라인 세계를 보조적으로 이용하는 세대온라인 세계에서 살며 오프라인 세계로 외출만 하는 세대로 대분열을 겪었기 때문이다. MC무현을 아는지의 여부가 어느 쪽인지를 결정한다.

 

~~

 

86세대에게는 군부독재라는 구조적 제약을 극복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들은 약자 편에 설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양심(혹은 공명심?)의 목소리를 따라 약자(노동자, 농민)들과 연대했고, 부당한 강자(군사정권)에 맞섰다. 물론 그들은 민주화 이후 차차 중간층 내지 기득권층으로 변모해 갔다. 2025년 현재 한국사회의 각종 문제들은 더 이상 양심의 소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해졌다.

 

~~

 

86세대는 정의와 불의, 약자와 강자의 구별이 뚜렷한 시대를 살았다. 복잡계에 던져진 그들은 자기의 실수를 직시하고 인정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양심의 명령에 따라 스스로 약자의 편에 섰다고 자부심으로 살아 왔던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86세대는 자기들의 정치적 결단이 정의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이 86세대 정치인의 독선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정치인의 상상력 부족은 무능의 죄를 낳을 수 있다. MZ 청년은 86세대와 다른 세계 사람들이다. 그들이 서식하는 온라인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는 전태일의 분신자살, 5·18 학살, 미군 성폭력 강력범죄의 기억이 없다. 그들은 페미니즘을 꼰대의 양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청년 남성들이여! 그대들이 문재인도, 86세대도, 4050 남페미 스윗남들도 믿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우리는 그대들의 영혼에 생긴 짙은 그늘을 간과했었다. 미안하다. 사과한다. 너무 늦어서 부끄럽다. 우리는 탐욕스러웠고, 위선적이었다. 세상을 안일하게 누리고자 분칠과 거짓에 익숙했다. 낡은 정의의 잣대를 고집하다 위선에 빠진 줄도 몰랐다. 그대들이 절규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점점 복잡계로 변해가고 있다. 그대들이 더 잘 알겠지만, 강자와 약자, 압제자와 피압제자, 선과 악의 기준선은 점점 불분명해지고 있다. 86세대들에게 과오가 많지만, 그들이 과오의 결정체이거나 절대악인 것은 아니다. 그대들이 86세대를 혐오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 정서를 영원불변의 것으로 고수한다면, 그대들은 지난 30년간 86세대들이 저지른 것과 똑같은 과오를 범하게 된다. 해상도 낮은 개념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과오 말이다.

 

배수찬 지음, <2030 영혼의 연대기: 왜 그들은 윤석열을 선택했나>(통나무, 2025. 05. 08.), 27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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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윤석열은 정당한 이유 없이 비상계엄을 일으키고 국민들에게 총을 겨눴잖아. 이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윤석열도 조롱의 대상이 되겠지?

 

아들: 아닐걸요.

 

아버지: ?

 

아들: 윤석열은 애초에 착한 척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조롱은 착한 적하던 인간이 안 착한 짓 하는걸 들켰을 때 당하는 거라구요.

 

(위의 책 11.)

 

위의 대화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이들은 반드시 위의 책을 읽어야 한다.

 

 

 

 

- 향린 목회 194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