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5. 13.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따른다면 인간 실존의 본질은 근심이 아니라 한가로움일 것이다. 사색적인 평온함은 절대적으로 우선시된다. 모든 활동은 이 평온함을 위해 이루어져야 하고, 결국 그것으로 귀착되어야 한다. ~~
한가로움에 대한 고대의 이해에는 일, 효율성, 생산성의 원리 속에 완전히 빠져버린 세계를 사는 오늘의 인간으로서는 전혀 접근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생의 구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한가로움을 중시하는 고대의 문화는 지금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 하이데거가 말하는 염려와 같은 것을 삶의 기조로 하지는 않을 그런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
아우구스티누스도 한가로움(otium)을 활동하지 않는 수동성과 구별한다. “한가로움 속에서 기쁨을 주는 것은 짐을 벗어버린 나태함이 아니다. 기쁨은 진리의 탐구나 발굴에서 온다.” “진리의 인식을 향한 노력”은 “자랑스러운 한가로움”에 속한다. 오히려 한가로울 능력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나태의 징표이다. 한가로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과 비슷하기는커녕 그것에 정반대되는 것이다. 한가로움은 기분 전환이 아니라 집중을 돕는다. 머무름은 감각의 집중을 전제한다. ~~
일하는 동물은 쉬는 시간만 알 뿐, 사색적 안식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
아렌트는 진정 새로운 것이 오직 행동을 향한 단호한 영웅적 주체의 결단에서만 나온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져 있다. 그러나 세계를 만들어내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건들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의 의식적 결단에서 비롯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그런 사건들은 대체로 한가로움의 결과이거나 강요되지 않는 놀이, 자유로운 상상력의 결과이다. ~~
니체는 “활동적 인간의 주된 결점”이라는 제목이 붙은 아포리즘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활동적인 사람들에게는 보통 고차적인 활동이 없다. 개인적 활동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관리로서, 상인으로서, 학자로서, 즉 일정한 부류에 속한 존재로서 활동할 뿐, 결코 개별적이고 유일한 특정 인간으로서 활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게으르다. [……] 활동적인 사람들은 돌이 구르듯이 구른다. 어리석은 기계의 원리에 따라서.” ~~
더욱 활동적으로 된다고 해서 경험에 대한 수용성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는 특별한 수동성이 필요하다. 경험을 위해서는 행동하는 주체의 활동성에서 벗어나 있는 무언가의 다가옴을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물이든, 인간이든, 신이든, 어떤 것과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우리를 맞히고, 우리를 덮치고, 우리를 뒤집어버리고 우리를 변신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
오늘날은 사유조차 노동과 유사해진다. 그러나 일하는 동물은 생각할 줄 모른다. 진정한 사유, 즉 숙고하는 사유에는 노동이 아닌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 ‘Sinnen’(숙고하다)은 고고독일어에서 여행을 의미하는 sinnan에서 유래한 것이다. 숙고가 나아가는 행로는 예측할 수 없고 불연속적이다. 계산하는 사유는 길을 떠돌지 않는다. ~~
사색이란 신의 애정 어린 관심 속에 머무름으로서,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구분과 장악의 의도를 포함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비로운 합일(unio mystica) 속에서 분리선과 울타리가 완전히 해제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사색적 삶은 인간을 더욱 완전하게 만드는 삶의 형식이다. “사색적 삶 속에서 추구되는 진리의 사색은 곧 인간의 완성을 이루는 것과 같다.” 모든 사색적 계기가 소실된다면, 삶은 일로,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행위로 퇴락하고 만다. 사색하는 머무름은 노동으로서의 시간을 중단시킨다. “시간 속의 활동과 일, 그리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
행도 없는 사색적 삶은 공허하고 사색 없는 행동적 삶은 맹목적이다.~~
숙고는 “미심쩍은 것에 대한 느긋한 태도”로 빠른 포획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느리고 긴 것에 몸을 맡긴다. ~~
사색적 머무름 또한 친절의 실천이다. 그것은 개입하기보다, 무언가가 일어나고 벌어지게 놓아두고 이를 승인한다. ~~
모든 사색적 요소가 추방되어버린 삶은 치명적인 과잉활동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위 속에서 질식할 것이다. ~~
니체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한병철 지음/김태환 옮김, <시간의 향기: 머무름의 기술>(문학과 지성사, 2013. 3. 19.), 139~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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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철학자의 언어로 듣게 된다.
제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게으른 목사가 될 것이다.
몰두하여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머물러서 다가오는 것을 맞이할 줄 알아야 한다.
변화시키는 분 안에 나를 맡길 필요가 있다.
- 향린 목회 191일차